[가정예배 365-11월 8일] 육적 부요함을 영적인 것으로 착각 맙시다

입력 2017-11-08 00:00 수정 2021-03-31 16:15

찬송 :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14장(통 511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4∼22절

말씀 : 우리가 누리고 있는 부요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그들이 누린 부요 때문에 그 부요가 저주가 돼버렸습니다. 부요 때문에 성도들이 영적인 맹인이 됐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을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그들의 영적 상태입니다. 그들은 곤고했고 가련했으며 가난했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그들의 모습은 정말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로 심각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을까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육적으로 부요하면 당연히 영적으로도 부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적인 부요가 영적인 부요의 증거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런 착각은 라오디게아 성도뿐만 아니라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고 높은 연봉과 큰 평수의 집에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으며 건강하고 사업이 잘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영적으로 부요하며 하나님이 나의 삶을 축복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착각입니다. 육체의 부요를 보고 영혼의 모습을 어림짐작해서는 안 됩니다.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내 영혼의 상태를 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신앙의 열정을 잃고 미지근해 있어서 예배도 대충 드리고 헌신과 봉사를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로 드리지 않고 있다면 지금 내 영혼의 상태가 하나님이 토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적으로 부요하기 때문에 영적으로 문제없다’는 생각은 내가 영적인 맹인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요는 우리의 신앙을 변질시키는 무서운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말씀합니다. 9절에서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인 부요를 아무 문제없는 신호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생각은 치명적입니다. 최고의 복은 부요가 아니라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나의 모습이 이 미지근함에 있으면서 라오디게아 성도처럼 부족한 것도 아무 문제도 없다고 여기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회개의 자리에서 다시 출발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부요한 시대에 사는 우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게 하여 주옵소서. 부요한 시대에 살았던 라오디게아 성도들이 아무 문제없다고 여겼던 그 무지함이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게 하시고 무엇이 복인지 다시 깨닫고 진정한 복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향한 믿음이 새로워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중식 목사(포항중앙침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