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청각·언어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영상수화 등으로 중계하는 노동자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는 고객의 욕설과 성희롱 등에 노출돼도 보호받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중계서비스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노동자가 극심한 정신건강장해를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중한 첫걸음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감정노동 개념이 처음 제시된 것은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의 ‘감정노동’이란 저술을 통해서다. 그는 항공사 승무원의 직업세계를 파헤치면서 감정노동이 노동시장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경위를 세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30년이 훨씬 지난 1983년의 이야기다.
해외의 경우에는 감정노동 문제에 꽤 오래전부터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주요 사회심리적 위험 요인에 높은 감정 요구가 포함되어 있다. 감정노동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마련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대 이후 고객 만족이 경영의 새로운 목표로 대두되면서 감정노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고객의 폭언, 폭력 등으로 고통 받는 감정노동자의 사례들이 SNS나 언론매체를 통해 확산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나라 감정노동자 규모는 약 6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이 감정노동에 종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 업무나 직종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을 상대하는 업무라면 어디에서나 감정노동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작년 3월부터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령을 개정해 ‘업무와 관련된 고객의 폭력 또는 폭언 등으로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에 의해 발생한 적응장애와 우울병’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감정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최근에는 고객과의 문제 발생 시 대응방법 및 예방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엮어낸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핸드북’도 보급했다.
하지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고객을 향한 공손한 자세와 미소는 고객을 인격체로 존중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모습을 상하관계로 판단하고 접근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반대급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계일 뿐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의 거래, 수평적 관계인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러한 잘못된 생각들로 인한 행동, 이른바 갑질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미소라는 가면 뒤에서 아파하고 힘겨워하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대상이 결코 아니다. 누군가의 부모이며, 자녀다. 동시에 삶의 현장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인비목석(人非木石)’이라는 말이 있다. 사마천 자신이 옥에 갇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몸은 나무나 돌이 아니다’라고 빗댄 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의 감정이 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 고객과 판매자, 갑과 을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의 바탕에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깔려야 한다. 존중과 배려의 시민의식으로 감정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디딤돌을 놓아 보자.
김왕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
[기고-김왕] 감정노동 문제 해결에 합심을
입력 2017-11-06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