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봉호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이사장 “이웃 위해 절제하는 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

입력 2017-11-07 00:00
기아대책 손봉호 이사장이 지난 2일 서울 성북구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손 이사장은 “다른 사람의 선행을 보기만 했는데도 면역력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어려서부터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누리며 살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아대책 제공
그룹 ‘하이라이트’
한국사회에서 기독교 구호단체의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비영리단체(NPO)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커진 탓이다. 이들 구호단체 중에는 기독교라는 정체성을 감추기도 하고, 직접적인 방식의 선교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잖다. 지난달 24일 창립 28주년을 맞은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대표회장 유원식)은 '기독교 정체성'과 '투명경영'을 앞세워 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일 손봉호(79) 기아대책 이사장을 서울 성북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고신대 석좌교수로 있는 그는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기독교 윤리운동과 나눔문화 확산에 힘써왔다. 밀알복지재단을 통해 장애인 복지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고 환경운동에도 관심이 많다. 밀알복지재단 활동 당시 유원식 회장과의 인연으로 2015년 8월 기아대책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손 이사장은 한국사회는 물론 한국교회 기부문화에 대한 현주소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그는 “전 세계 기부 동향을 보면 기독교 국가들이 제일 많이 하고, 불교 가톨릭 순이며 유교 문화권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기부에 인색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한국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한국보다 순위가 낮고, 중국은 거의 순위에 들지 못한다.

손 이사장은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보다 기부 순위가 높은 것은 종교가 상당히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국민 전체를 놓고 볼 때 한국교회가 남을 돕는 적극적인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고 말했다. 현재 해외 구호활동을 펼치는 단체 가운데 약 80%가 기독교라는 신앙적 베이스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기부문화는 실제 참여율에 비하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한국교회는 적극적인 사랑은 잘 실천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소극적인 사랑, 바로 윤리 분야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기독 NPO의 선교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손 이사장은 “‘떡과 복음’을 전한다는 기독교 정체성을 지키되, 투명경영을 통해 의심하는 후원자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로 기아대책의 사역을 소개했다. 그는 “처음부터 떡과 복음을 전달한다고 밝힌 만큼 솔직하게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밝히는 대신 기부금을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쓰는 방식으로 감동을 줘서 기부를 더 받는 것이 정직한 방법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현재 기아대책은 해외 60여개국에서 CDP(아동개발프로그램)를 중심으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손 이사장은 “그동안 선교를 해 보니 기존 문화, 종교에 젖은 어른들을 전도하기는 참 힘들더라”며 “어릴 때 전도하고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과거 아프리카에 무수한 원조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실패를 지적하면서 “도움 받는 이들의 의식을 바꾸지 않고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절제’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자발적 불편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교회가 ‘오직 성경으로’ 정신에 따라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진짜 문제는 말로만 성경을 이야기하고 실제 삶에서의 행동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500년 전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은 돈과 권력 때문이었다”며 “세속적인 가치를 너무 중시하면서 한국교회도 돈이라는 우상을 섬기거나 돈이라는 유혹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돈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만 돈에 대한 욕심, 성경이 말한 탐심을 절제하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부족하다”며 “독일과 네덜란드의 크리스천은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아 검소하고 절제하는 삶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실천한다”고 설명했다.

손 이사장은 독일 신학자 그룬트비의 이론을 근거로, 고대 그리스나 동양의 유교사회에서 말하는 절제와 기독교 절제의 차이점을 소개했다. 그는 “기독교의 절제는 이웃에게 해를 안 끼치고 이익을 주는 것에 목적이 있다”며 “단순히 내가 올바르게 살고, 자기 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절제라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고 구분했다.

베드로전서 2장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는 말씀을 언급하며 “우리가 세상 나그네라는 생각을 갖고 살 때 세상 것에 집착하지 않고 절제할 수 있고, 역설적으로 그렇게 절제할 때 이 세상에 유익을 줌으로써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에 선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한평생 검소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 15년 전 정년퇴임 이후 경기도 광주 인근에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데, 수도 시설을 따로 두지 않고 지하수를 사용한다. 전기는 태양광발전을 통해 자가발전해서 쓴다. 최근 경유차의 미세먼지 유발 문제가 지적되면서 오랫동안 타왔던 소형자 ‘프라이드’를 폐차하고, 전기차 ‘아이오닉’을 타기 시작했다. 그동안 쓰지 않아 축적됐던 전기로 충전한다.

그는 “돈이 들지 않으니 자동차를 좀 더 이용하게 된다”며 “주유소를 지나다닐 때마다 미안하다”며 웃었다. 지난해 아들 내외가 에어컨을 달아줬지만 아직 사용하진 않는다.

그는 “나눔이나 봉사활동도 어릴 때부터 경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교회가 나눔과 봉사활동이 실제로 해 보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훈련을 시키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아대책 다양한 캠페인
해외 결연아동 후원·희망온 등 기부 문화 확산 앞장

기아대책(대표회장 유원식)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해외 결연아동 후원뿐 아니라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과 청년층의 나눔 동참을 위해 네이버 해피빈과 펼치고 있는 '정기저금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배우 박신혜 정태우에 이어 지난달 27일부터 그룹 '하이라이트(사진)' 멤버들이 동참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리더인 윤두준씨가 6년째 아프리카 잠비아에 매달 20만원씩 정기후원을 하고 있던 인연으로, 이 지역에 학교를 세우기 위한 후원 모금에 나선 것이다.

하이라이트의 또 다른 멤버 용준형씨는 지난달 16일 하이라이트 컴백을 기념하면서 국내 저소득 아동의 겨울나기 지원을 위한 '희망온' 캠페인 후원금으로 1016만원을 내놨다. 이 사업은 기아대책이 국내 2000여명의 결연아동 가정과 지역아동센터 등 난방비 마련이 어려운 복지시설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밖에 대학생들이 돈이 없어 밥을 굶거나 돈을 벌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청년 도시락 지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식권 50매 구입비용을 지원함으로써 학업이나 자신의 꿈을 찾는 시간에 좀 더 매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또 최근 고령산모, 조산 산모의 급증으로 출생 당시 몸무게가 1.5㎏이 안 되는 '이른둥이'(극소 저체중아 및 미숙아)를 지원하는 도담도담지원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