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병원 옆에 암환우들 내 집 같은 보금자리

입력 2017-11-06 00:00
김우준 맑은샘교회 목사가 지난 9월 경기도 고양시 암 환우 쉼터에서 자궁경부암 2기 환자인 박은숙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고양=신현가 인턴기자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박씨(오른쪽)가 김 목사와 함께 기도하는 모습. 고양=신현가 인턴기자
경기도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5분 남짓 걸어가면 특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암환우 쉼터’다. 빌라를 개조해 만든 방 두 칸짜리 쉼터엔 2010년부터 지금까지 암환자 2000여명(연인원)이 머물렀다. 한 달에 20명 넘는 환자가 드나든 셈이다.

쉼터 운영 주체는 한국기독교루터회 맑은샘교회(김우준 목사)다. 교회가 암센터 앞에 암환자를 위한 쉼터를 마련한 이유는 뭘까. 지난달 18일 오후 쉼터를 찾았다.

수척한 모습을 한 박은숙(61·여)씨가 쉼터 큰 방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자궁경부암 2기인 그는 전북 익산에서 와 6주째 머무르고 있었다. 감리교회 권사인 그는 루터회 성도는 아니지만 쉼터 이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 지난해 11월 받은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는 박씨는 “국립암센터를 찾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병원에서 가깝고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암환자들은 방사선 치료를 수개월 받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가까운 쉼터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숙소에는 침대 에어컨 옷걸이 등이 있고 냉장고와 가재도구도 마련돼 음식을 해 먹기에도 어려움이 없다.

김 목사는 박씨 얘기를 들어주며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했다. 그는 디아코니아(섬김) 사역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난 김동진 목사의 뒤를 이어 2015년부터 이곳에서 사역하고 있다. 그는 직접 집을 수리하고 환자들을 돌본다. 힘들 법도 한데 환자들 걱정을 먼저 한다. “평소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도 어느 날 연락이 끊길 때면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에 괴롭습니다.”

김 목사는 ‘안타까운 일’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수술이 잘돼 완쾌된 줄 알았던 한 집사님이 6개월 사이에 치아가 빠지고 피부가 벗겨지며 운명한 것을 보고 암의 무서움을 몸소 느꼈다.

한번은 50대 후반 남성 암환자가 임종 직전 그의 친누나를 통해 예수님 영접 기도를 부탁해온 적이 있었다. 병원으로 달려간 김 목사는 호흡기를 낀 채 힘들어하는 남성을 위해 기도드리려 했지만 상심이 컸던 그의 다른 가족들이 거절한 적이 있다. 김 목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구원의 문 바로 앞에서 돌아서야 했던 그때가 아직도 안타깝다”고 회고했다.

김 목사는 수요일과 금요일, 주일예배 집전을 빼고는 쉼터로 향한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시설을 점검한다. 한 환자가 문을 잘못 잠가 창문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연 적도 있다.

목회 일과 환자를 돌보는 일로 바쁘지만 김 목사는 이곳을 찾는 환자들에게 오히려 고마워한다. 환자 중에는 이불 빨래를 해주거나 채소 등을 선물로 몰래 놓고 가는 이들도 있다. 그는 또 “함께하는 동역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세에 훨씬 못 미치는 월세 30만원에 방을 내어준 집주인에 대한 고마움도 빼놓을 수 없다.

김 목사가 쉼터 사역을 이어가는 데는 특별하거나 거창한 이유가 있진 않았다. 그는 “쉼터를 통해 성도 수가 늘어나거나 빛을 보는 일은 없다”면서 “그럼에도 50명이 채 되지 않는 교회 성도에게는 쉼터를 운영한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손’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고양=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