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통 청와대 민원, 파리 날리는 국회 청원

입력 2017-11-06 05:00

靑, 일정 수 추천받으면
정부·靑 관계자 직접 답변
새로운 ‘소통의 문’ 열어
중복투표 해결이 과제로
국회는 절차부터 까다로워
의원 의견서까지 첨부해야

낙태죄 폐지 청원 추천인 수 23만5372명.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청원 게시판이 날로 뜨겁다. 반면 국회 홈페이지의 청원 제도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새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감 때문이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데 상대적으로 소홀한 국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5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총 2만5400여건의 글이 올라와 있다. 지난 8월 말 게시판이 열리고 두 달여 만에 20만명의 추천을 받은 청원도 2건이나 나왔다. 이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0대 국회에는 총 106건의 청원이 접수됐다. 국민의 목소리를 입법·국정운영에 반영한다는 취지는 같지만 호응도는 250대 1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새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치 때문”이라며 “여기에 청와대가 20만명의 지지를 받은 사안은 구체적인 입장을 내겠다고 발표하면서 호응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 갈등사안을 공론화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동안에도 사회적 문제를 정치권에 전달하려는 온라인상의 움직임은 포털 사이트나 국회 청원 등 여러 형태로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국민의 요구에 정부가 직접 답하고, 실제 정책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언론이 주목한다는 점에서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낙태죄 폐지 청원에 참여했다는 대학생 이모(25·여)씨는 “평소 문제라고 생각했던 사안을 청와대에 전달하고 뭔가 변화가 생길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원 창구인 국회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 4년간 접수된 청원은 227건이었고, 이 가운데 채택된 사안은 2건뿐이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관계자는 “국회에 국민이 청원서를 제출해도 실제 소위원회에서는 청원심사가 잘 열리지 않는다”며 “국민이 국회에 요청을 해도 실효성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청원의 접근성을 높인 것도 국회와 비교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경우 온라인 홈페이지에 접속만 하면 청원 글을 게시할 수 있다. 게시된 청원에 힘을 실어주려는 시민들도 SNS 계정에 로그인만 하면 참여가 가능하다. 국회 청원은 절차가 까다롭다. 국회의원의 청원소개의견서를 첨부해야 청원을 접수할 수 있다.

대통령 국민청원 제도에도 맹점은 있다. 지난달 30일 추천인 수 20만명을 넘긴 낙태죄 폐지 청원을 둘러싸고 중복투표 논란이 불거진 게 대표적이다. SNS 계정 로그인만 하면 투표를 할 수 있다 보니 여러 계정을 만들어 중복투표를 하곤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이 편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SNS 로그인 방식을 택했다”며 “완전 실명제를 도입하면 개인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참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에 접수된 청원은 대부분 대통령의 권한으로 답변하기엔 어려운 문제들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민주주의 원리에 충실하다는 상징적 의미는 있지만 그 자체로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며 “청와대의 답변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올리고 언론을 통해 확산되는 등 이슈가 공론화되는 과정을 더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