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험대 선 한국 외교, 철저하고 빈틈없이 대응하라

입력 2017-11-05 17:2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일본에 도착해 한국, 중국, 베트남,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순방을 시작했다. 순방 기간 중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갖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및 미·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향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 변화를 가늠할 큰 그림이 공개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대응 전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슈퍼위크’가 시작된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 시작된 한반도 위기의 당사자인 우리는 이 기간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7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APEC 정상회의 기간 중인 10일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그 사이인 8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반도 문제 해법을 논의한다. 미국과의 공고한 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는 문 대통령의 균형 외교가 시험대에 올라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가능성을 평가받는 일정인 것이다.

사전에 일정과 발언을 조율했더라도 어느 때보다 돌발 변수가 많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이익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 순방의 주요 목적이 북한 핵 위협 제거인 만큼 방한 기간 중에는 확고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과 긴밀한 공조를 강조하는 긍정적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올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을 환영한다는 원론적 언급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시 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은 관계 개선을 이룬 뒤 첫 만남이라는 의미가 적지 않아 미래를 향해 서로 노력하자는 덕담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만족하고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과거 노무현정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웠고, 박근혜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용적 균형 외교를 추구했지만 구체적이고 치밀한 전략이 뒷받침되지 못해 실익 없이 끝났다. 오히려 강대국의 반발을 자초하면서 스스로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이런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외교적 수사로 포장된 말 속에 숨어 있는 상대방의 본심을 정확하게 읽고 우리의 전략적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빈틈없이 대응해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모든 돌발 상황 가능성을 재검토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안보 문제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통상 마찰의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