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서 4장 10∼11절
요나서는 뜬금없이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질문을 받은 요나가 회개하고 돌아왔다’고 개운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박 넝쿨을 아끼는데 나도 니느웨에 있는 이방 사람들 12만명을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으로 급히 마무리됩니다. 마치 미완성 소설인 것 같은 느낌마저 줍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가감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선지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욕망을 따라 반대로 갑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데 요나는 다시스로 갑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자신의 이름 뜻과는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비둘기는 온유하고 겸손한 성령의 상징입니다. 노아의 방주에서 기쁜 소식을 전했던 ‘사자’였습니다. 하지만 기쁜 소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가 고집만 부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뒤에도 온전히 순종하지 않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만 말합니다. 니느웨가 회개하길 원하지 않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성 동쪽에 초막을 짓고 니느웨가 언제 망하는지 지켜봅니다. 이후 벌레가 박 넝쿨을 갉아먹어 뜨거운 햇빛이 비치자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그는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요나서에 나오는 다른 인물들은 순종하는 자세를 보입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의 사공들은 요나를 살리려고 나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생명에 대한 간절함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바닷속으로 요나를 던지며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욘 1:14)라고 말합니다. 멸망 직전까지 갔던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의 예언을 듣고 금식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로마서 5장 12절은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세상 가운데 죄와 죽음이 생겨나 모든 사람이 멸망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돼 다시 생명을 얻게 됐습니다(롬 5:19).
내 몸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단순한 구도자의 자세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생명과 사랑의 통로로 삼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요나는 한 명의 선지자였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니느웨 사람 12만명의 생명을 맡기셨습니다. 요나서 마지막에 나오는 하나님의 질문은 요나에게 맡긴 12만명의 목숨을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먼지투성이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먼지에 짓눌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먼지는 털면 됩니다. 요나처럼 마음속에 품은 미움과 분노의 감정,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은 모두 찌꺼기로 여기고 버리면 됩니다. 하나님 뜻과 관계없이 내 뜻을 관철하리라는 의지를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먼지를 털어내야 합니다. 요나에게 맡기신 12만명의 생명처럼 내게 맡기신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주신 소명과 소망을 분명히 붙잡고, 믿음의 경주를 통해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영구 목사(서울 하나교회)
[오늘의 설교] 한 사람의 가치
입력 2017-11-07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