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잉카 “권력에 대항하고 경계 초월하는 게 詩”

입력 2017-11-06 05:00
한국을 대표하는 고은(왼쪽) 시인과 나이지리아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월레 소잉카가 4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콘퍼런스홀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시(詩)로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거장 두 명이 만났다. 한국을 대표하는 고은(84) 시인과 나이지리아 시인 겸 극작가 월레 소잉카(83)가 4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콘퍼런스홀에서 ‘해돋이가 당신의 등불을 끄게 하라’는 제목으로 특별 대담을 했다.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였다.

고은은 1980년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 혐의로 수감됐을 때 ‘만인보’를 구상, 민주화운동가 등 5600명이 넘는 인물을 소개하는 연작시집 30권을 남겼다. 소잉카는 60년대 말 나이지라아 내전 중단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가 2년 가까이 투옥됐다. 이때 ‘감옥으로부터의 시’를 썼고 8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소잉카는 앞선 기조강연에서 “한반도 상공에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점에 최초의 아시아 문학축제가 열리는 건 아주 시의적절하다”며 “역사적 상흔이 치유되면서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또 “시는 권력의 안티테제이자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라며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작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고은은 본격적인 대담에 앞서 “소잉카 선생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어 세상을 초월한 듯한 인상을 준다”는 인물평으로 좌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소잉카의 숱 많은 백발을 구름에 비유한 것이다. 소잉카는 “문학도 구름과 비슷하다. 구름이 대지에서 수분을 빨아들이듯 문학도 우리가 사는 땅에서 (소재를) 끌어오는 것”이라고 재치 있게 화답했다.

두 사람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공통점에 대해 얘기를 주고받았다. 고은은 “서구는 대평원을 중심으로 기독교 문명이라는 단일성을 갖고 있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는 언어도 인종도 자연도 다양하다”며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곳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라고 했다. 소잉카는 “잔인한 식민 통치와 수백 년에 걸친 노예제 역사라는 상처가 공통적”이라고 했다.

고은은 이 다양성에서 아시아 문학의 발전 가능성을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문학성이 꽃 피어 세계문학의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소잉카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문학에 기대는 이유는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며 “근래 아프리카에서 젊은 여성 작가들이 부상하는 것은 굉장히 반가운 변화”라고 소개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결성된 테러조직 ‘보코하람’과 같은 극단주의 이슬람의 움직임이 문학의 창의성이 활발해지는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해석했다. 두 사람은 모두 문학의 존재 의의와 작가의 소명에 대해 거장다운 견해를 제시했다.

고은은 “1934년 이미 영국에서 ‘시는 끝나리라’라는 예언이 나왔지만 시는 항구적인 별처럼 존재한다”며 “우주의 운율과 파동, 파도와 바람이 모두 시적인 것이다. 희로애락이 있는 한 시는 사라질 리가 없다”고 단언했다. 소잉카는 “시의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준다”며 “문학의 다양한 경계를 뚫고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의 대담을 지켜본 문인과 일반인 300여명은 “문학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나눌 수 있는 자리”라고 평했다.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제1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로 몽골의 시인 담딘수렌 우리앙카이(77)를 선정했다. 참여 작가들은 이날 “아시아 문학이 인간의 상처와 꿈을 담은 기록임을 확인하고 이를 인류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2017 광주선언문’ 발표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광주=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