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정상은 한·미·일 안보 협력이 북한의 위협 대응에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이러한 협력을 더욱 발전시키기로 했다.’ 6월 한·미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선언문의 일부이다. 한·미·일 안보 공조는 미국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반발과 정치적 파장을 의식해 보수정권조차 모호성을 유지하려 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후보 시절 미국에도 ‘노’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덜컥 명문화에 합의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결단에 찬사를 보냈지만, 미국에 이렇게까지 ‘내줘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한·미·일 공조는 필요하지만 굳이 선언문에 명문화할 필요가 있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일 안보 협력이 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10월 30일 국회 국감장 ‘3불(不)’ 발언이다. 하루 후 한·중은 관계개선 합의문 도출에 성공했다. 모두 한·중 관계 개선을 반기고는 있지만, 외교부 장관이 공식석상에서 미래 정책주권 포기를 ‘분명히’ 하면서서까지 합의에 임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대한민국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지속적 경제 번영뿐 아니라 북의 비핵화와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중국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급적 중국의 전략적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전향적 대중(對中) 외교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맞다. 중국의 적극적 역할로 북이 비핵화의 길로 간다면 사드 추가 배치나 MD 참여, 한·미·일 동맹은 필요 없다. 하지만 북핵을 방관할 경우 중국의 전략이익에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는 정책선택지를 지렛대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가뜩이나 부족한 대중국 지렛대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 사드 보복에 대한 WTO 제소도, 전술핵 재배치 카드도 너무 쉽게 포기했다. 사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나 한국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흘린 이유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모호성을 유지해 보조를 맞출 필요도 있었다. 물론 외교관계에서 신뢰는 중요하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전 정부와 달리) 진정성으로 중국을 대해 관계 개선에 성공했다는 한 당국자의 진단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중국은 북한과도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고, 이번 합의는 한국 정부의 진정어린 노력 때문이라기보다 내부의 전략적 판단에 기인한 바 크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일관된 전략을 갖고 정책을 펴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때그때 미봉책만 사용하는 줄타기 외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미국에는 미국이 듣기 좋은 말을, 중국에는 중국이 듣고 싶은 약속을 해 주며 봉합에 급급하다 보면 결국 모두에 원망을 살 수 있다. 지금이라도 외교 대원칙과 핵심 이익을 규정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에 의거해 외교대계를 짜고 대미·대중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불만이 나올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한·미, 한·중 관계를 형성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정책 핵심 중 하나는 MD 확장 및 한·미·일 공조 강화다. 물론 공조와 동맹은 다르다. 하지만 6월 한·미 정상 공동선언문에는 ‘에너지 안보, 사이버 안보 같은 범세계적 도전 대응에 3국 관계를 활용’하기로, 10월 28일 한·미 국방장관 공동성명에는 ‘3국이 아태 지역에서 공동의 안보 도전에 직면’해 있으니 ‘지역의 평화’를 위해 협력을 증진하기로 명문화했다. 대북 공조 외에도 한·미·일 글로벌 동맹, 지역 동맹의 길을 열어 놓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다. 3불 약속을 공식화할 생각이었다면 한·미·일 공조는 애초에 명문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명문화했다면 3불 약속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줄타기 외교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포커스-김재천] 3不 약속과 줄타기 외교
입력 2017-11-05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