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히스토리] “英, 유대국가 건설 찬성” 중동의 비극 씨앗 뿌린 한 장의 서신

입력 2017-11-03 18:56 수정 2017-11-03 21:39
사진=AP뉴시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유대계 영국 은행가로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 운동 후원자였던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서한을 보냈다. 내각의 승인을 받아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민족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찬성하다는 내용을 담은 ‘밸푸어 선언’이다.

밸푸어 선언은 서구 열강이 처음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공식 지지한 문서로 이스라엘 건국의 촉매가 됐다. 이후 1922년 국제연맹 승인 아래 영국과 프랑스가 아랍 지역을 분할해 통치했고, 영국이 맡았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위임통치가 1948년 끝나자 유대인 국가가 들어서게 됐다.

문제는 영국이 1915년 아랍 민족주의자들에게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는 일을 도우면 아랍 국가를 세우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이다. 소위 후사인·맥마흔 서한이다. 이후 배신당한 아랍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수차례 영국에 항의했지만 무자비하게 진압 당했다. ‘밸푸어 선언’이 역사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끝없이 되풀이되는 유혈사태와 분쟁의 씨앗이 된 것이다.

밸푸어 선언 100주년을 맞아 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과 터키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여러 곳에서 영국에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고 AP통신이 전했다(사진). 팔레스타인 서안의 나블루스에서는 약 4000명이 모여 영국 국기를 태운 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밸푸어 선언 당시 외교장관 아서 밸푸어의 모형을 태우는 화형식을 벌였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식민주의자 영국이여, 우리는 사과를 원한다”고 외쳤다. 또한 “자기 소유도 아닌 것을, 가질 자격도 없는 이에게 내준 약속”이라고 쓴 팻말과 현수막을 들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런던을 방문해 메이 총리와 밸푸어 선언 100주년 기념 만찬을 했다. 또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은 일간 텔레그래프에 보낸 기고문에서 “나는 이스라엘 건국에서 영국의 역할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에 리야드 말키 팔레스타인 외교장관은 영국과 이스라엘의 ‘밸푸어 선언 축하’에 항의하는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