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예산 뇌물로 유용
朴이 요구하고 묵인 드러나
靑 비서관 부정한 돈 흐름
대통령 비자금 배제 안해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수령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은 결국 국정원과 청와대의 검은 거래 정점에 박 전 대통령이 있었다는 폭로다. 국가예산이 뇌물로 유용되는 장면을 박 전 대통령이 묵인했음은 물론 검은 거래 자체를 요구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핵심 측근의 결정적 진술로 박 전 대통령은 또 다시 검찰의 뇌물 수사선상에 올랐다. 그는 이미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으로부터 433억여원의 뇌물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상태다.
검찰은 애초 이 전 비서관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의 체포 단계부터 “대통령이 연루돼 있다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태도를 취해 왔다. 국정원이 특활비 상납의 대가로 얻으려 했던 게 인사와 예산 등의 편의라면 이는 ‘문고리’보다 대통령에게 해야 할 청탁이라는 추론이었다. 검찰은 청와대 전직 비서관들의 계좌추적으로 파악한 부정한 자금흐름이 사실상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이 또다시 전면에 등장한 ‘국정원 게이트’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와 닮은꼴로 흘러갈 전망이다. 우선 현재까지의 공통점은 청와대 쪽의 요구가 선행된 ‘요구형 뇌물’이라는 점이다. 돈을 전달받은 대상은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돈을 걷은 대상만 대기업에서 국정원으로 바뀌었다. 돈을 전달한 쪽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필요한 ‘현안’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번 검찰·특검 수사 결과 가운데 최순실씨와의 ‘경제공동체’ 논리를 가장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번에는 ‘문고리’의 범행에서 자신이 자유로움을 강변해야 할 처지다.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의 개입을 한사코 부인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이 전 비서관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폭로했다는 차이가 있다.
검찰은 청와대가 국정원의 돈을 활용할 때 증빙이 필요 없다는 등의 이점을 알고 검은 거래를 먼저 요구했다고 의심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이 전 비서관의 폭로는 형사재판에 넘겨져서도 “사익을 추구한 적 없다”고 일관하던 박 전 대통령에게 신뢰도와 도덕성 측면에서 치명적 영향을 줄 전망이다. 법조계에서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언론 보도로 조금씩 알려질 무렵 청와대에서 국정원에 “돈을 그만 보내라”고 보낸 ‘사인’도 박 전 대통령의 지시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전 비서관의 폭로가 본인의 비리를 무마하거나 뇌물죄의 구성을 어렵게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자금 수수였지만, 결국은 국정과 관련해 지출됐다고 변론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전 정권의 조직적 비자금 조성 가능성을 열어두고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실제 지시 여부부터 확인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재경 판사는 “횡령한 세금이 뇌물로 전달됐다면 유례없이 죄질이 나쁘다”고 평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핵심 측근의 폭로… ‘朴 비자금’ 뇌관 터지나
입력 2017-11-02 18:53 수정 2017-11-02 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