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이 사라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기업개혁론’을 들고 나왔다. 지난 6월 재벌그룹과의 1차 간담회 때와 달리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발적 노력’을 강조했다.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안은 여전히 실체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5개월 전과 같이 ‘기업의 셀프 개혁’을 촉구했다. 재벌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설명하면서도 인위적 개혁은 없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김 위원장은 새 정부 들어 신설된 기업집단국과 관련해 “기업집단국의 역할 중 하나가 직권조사와 제재는 맞다”면서도 “기업정책에 대한 법·제도 개선방안을 제안하고 집행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달고 출범한 기업집단국을 바라보는 재계의 불안감을 씻어내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보인다.
재벌개혁의 데드라인도 미뤘다. 김 위원장은 언론 등을 통해 자발적 개혁의 마감 시한으로 알려진 12월에 대해 “12월 말이 1차 데드라인”이라고 했다. 이어 “12월 정기국회에서 개혁입법 진행 상황을 반영해 공정위의 기업개혁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간담회에 앞서 내부적으로 준비한 보고자료 제목도 ‘기업개혁 개혁방안 추진실적 및 계획’이었다.
기업들에 공정위의 속사정도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12월쯤 돼야 공정위의 인력 충원이 이뤄져 정상적 업무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기업들이 우리 사회의 어떤 조직보다 변화의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면 기업은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며 재벌을 믿는다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시간을 달라는 기업의 요구에는 “변화 결과가 아닌 변화 의지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시간을 드리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총수일가의 전횡 방지, 소유·지배구조 개선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및 부당내부거래 금지, 투명한 지배구조, 부당한 경영승계 차단, 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배력 강화 방지 등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단시일 내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벌개혁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 있어 정부 역할보다 재벌 스스로의 개혁을 요구한 셈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하도급 갑(甲)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도급기업과 상생협력을 해 장기적인 이익 증대에 기여한 임직원을 높이 평가하고, 하도급기업과 분쟁을 일으키는 임직원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향으로 성과평가 기준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바람직한 노사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사용자 단체가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건전한 대화 파트너로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벌그룹의 공익재단 운영실태와 지주회사 수익구조 조사를 위한 법적 근거가 미미하다는 문제도 있다. 공익재단 운영 및 지주회사 수익구조와 관련해 법 위반 여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의 자발적 협조가 필수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재벌 개혁’ 대신 ‘기업 개혁론’ 들고 나온 재벌 저승사자
입력 2017-11-0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