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행장 돌연 사의… 채용비리 사정 바람 몰아치나

입력 2017-11-02 18:40 수정 2017-11-02 21:40

임기 17개월 남겨두고…
“비리 의혹 도의적 책임”
한일·상업銀 출신 갈등설도
지주사 전환 차질 불가피
수사중 농협금융도 파장

이광구(사진) 우리은행장이 돌연 사임했다. 2019년 3월까지인 임기를 1년5개월이나 남겨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이뤄진 결정이다. 이 행장은 국회 국정감사 때 불거진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에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옛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들의 고질적 인사 갈등을 배경으로 꼽기도 한다. 이 행장의 전격 퇴진으로 금융권 전반에 ‘채용비리 사정’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행장은 2일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2016년 신입직원 채용과 관련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경영의 최고책임자로서 국민과 고객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이사회에서 은행장직 사임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의 과점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이날 오후 1시30분부터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 행장은 실제 채용비리가 있었기 때문에 사퇴를 한다기보다 채용비리가 불거진 그 자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이사들에게 설명했다. 이사회는 이르면 다음주 후임 행장 선임을 위한 행장추천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외이사는 국민일보에 “가능하면 내부 인사가 발탁되는 게 낫다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이 행장 사의 표명과 관련한 특별한 조짐은 없었다. 이 행장은 1일 충남 아산시 이순신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프로농구 개막전에 참석해 우리은행 위비 여자프로농구단 경기를 응원했다.

다만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기류 변화는 있었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16일 국회의 금융감독원 국감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신입사원 특혜채용 의혹을 제기한 뒤 자체 특별검사팀을 가동해 남기명 국내부문장과 검사실장, 영업본부장 등 3명을 직위해제했었다. 이후 금감원이 채용비리와 관련해 우리은행 측 규명 조처가 미흡하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 채용비리 근절을 강력 주문하기도 했다. 우리은행 수사는 서울 북부지검이 맡기로 했다. 우리은행은 민영화되긴 했지만 예금보험공사 지분이 18.96%(6월 기준) 있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 행장 사임에 대해 “정부도 우리은행 대주주로서 기업가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예보와 함께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우리은행 내부 계파 갈등설도 여전하다. 상업은행 출신인 이 행장이 지난해 민영화 성공의 공로로 연임에 성공했을 때에도 한일은행 출신이 홀대받는다는 잡음이 불거졌었다. 채용비리와 관련한 내부문서가 공개될 때 유독 상업은행 출신만 연루됐다는 분석도 있다. 우리은행 안팎에선 벌써부터 차기 행장 후보로 한일은행 출신 부문장들이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 행장은 후임 행장이 결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은행 이사회 가운데 사내이사는 이 행장과 오정식 상근감사뿐이다. 이 행장 자리를 대체할 사람이 없다. 이 행장의 전격사임으로 정부의 잔여 지분 매각, 우리은행의 지주회사 전환에 차질도 불가피하다.

한편 채용비리로 당장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금융회사들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NH농협금융지주 김용환 회장의 거취에도 시선이 쏠린다. 금감원은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IBK기업은행 등 금융 공공기관과 유관단체의 5년간 채용절차 전반을 점검하고 있다.

우성규 홍석호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