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11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평화공원. 미국장로교(PCUSA) 평화사절단 인사들은 공원 남쪽의 위령탑을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PCUSA 사무총장 허버트 넬슨 목사와 호세 루이스 카젤 PCUSA 세계선교부 총무, 미엔다 우리아르테 아시아담당 국장, 로비나 윈부시 에큐메니컬 국장 등이 탑 앞에 섰다. 모두 숙연한 표정이었다. 이들은 67년 전 ‘노근리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양민을 추모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마음을 모았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미 제1기병사단 7기갑연대 군인들이 노근리 철교 아래에 피신한 양민 300여명을 나흘간 사살한 사건이다. 이를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노근리 평화공원에 미국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교단 임원진이 찾은 건 미국 교회에서는 처음이다.
이들은 시종 용서를 구했다. 넬슨 목사는 추모예배 설교에서 “미국 정부가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PCUSA는 지속적으로 정부 차원의 사과를 촉구할 것이고 희생자들의 아픔을 안고 교회 역할을 찾겠다”고 다짐했다.
노근리 사건은 1999년 미국 AP통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미국의 공식적인 사과 요구가 이어졌지만 2001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사과(apology)’ 대신 ‘유감(deeply regret)’을 표하는 데 그쳤다. 미국 정부 차원의 배상 논의도 진전이 없다.
한국 정부는 2004년 진상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후 피해 신고를 받아 226명(사망자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이 희생자로, 2200여명이 유족으로 인정됐다.
그동안 미국 교회들도 침묵했다. PCUSA가 노근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PCUSA 제222차 총회에서 ‘카유가-시라큐스 노회’가 제안한 ‘노근리 케이스’를 통과시키면서부터다.
당시 카유가-시라큐스 노회는 “미국 정부가 침묵하고 있는 노근리 사건에 대해 PCUSA가 나서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제안했다. 이는 PCUSA를 움직였다. 이번 방문은 미국을 대표하는 교단이 미국 정부를 향해 노근리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행보를 촉구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근리 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카젤 총무에게선 진심이 느껴졌다.
“문서로만 접하던 노근리 사건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접하니 희생자들과 유족의 아픔이 느껴져 고통스럽습니다. 충격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교회가 정부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이자 자매로서, 여러분께 용서를 구하고 이 아픔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울먹이며 발언을 이어간 그는 “미국의 교회들은 또다시 한반도에 위기가 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도 약속했다.
PCUSA 평화사절단은 위령탑 앞 50m 지점에 배롱나무를 심었다. 배롱나무는 7월부터 9월까지 여름에만 꽃을 피운다. 식수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때아닌 나비 한 마리가 나무 근처를 쉬지 않고 날아다녔다. 1950년 7월 사건 현장에 있었던 서청학(81) 할머니가 반색했다. “고맙단 인사를 하러 나비가 대신 왔구나···.”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영동=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
美장로교 대표단 “노근리 사건 용서 구합니다”
입력 2017-11-03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