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진심] 함께 산다, 곶감 꿰듯

입력 2017-11-04 00:05
조원회 목사
경북 상주시 외남면 마을 주민 대부분은 곶감 농사를 짓는다. 소상교회 김정묵 장로가 운영하는 감 건조장에서 한 주민이 감타래를 살펴보고 있다.
소상교회 십자가탑 오른쪽 아래 ‘땅 파고 하늘 심는 사람들’이란 교회표어가 보인다.
교회 마당에서 조원회 목사와 성도들이 곶감 작업을 하고 있다.
소상교회 김정묵 장로가 곶감 작업장 내부를 안내하고 있다.
작고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그 속에서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새 기획 ‘두 글자 발견’은 세상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 그들의 믿음을 재발견하는 코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신앙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이슈를 통해 재발견되는 ‘삶의 진리’를 전한다.

한국 농어촌교회는 대부분 미자립교회다. 목회자들은 생활을 꾸리기조차 어려워 이동이 잦다. 경북 상주시 외남면 소상교회도 조원회(60) 목사가 1996년 부임하기 전까지 16여명의 목회자가 거쳐 갔다. 목회자들이 부임하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함께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대부분 1년을 못 채우고 떠났다. 성도들은 새로 부임하는 목사를 볼 때마다 “이번엔 얼마나 있다 가실라카능교?”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기보다 형편이 좀 더 낳은 교회 청빙을 마다하고 20년 넘게 농촌교회 성도들과 함께 감 농사를 짓고 있는 조 목사를 만나는 동안 내내 떠나지 않는 단어는 ‘진심’이란 두 글자였다. 그가 진심으로 목회하는 소상교회는 ‘땅을 파고 하늘을 심는 교회’로 불린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함께 심어 키우기 때문이다. 상주는 전국 곶감시장의 60%를 차지하는 곶감 주산지다. 특히 교회가 있는 외남면은 곶감 특구로 주민 대부분이 감 농사를 짓는다. 1961년 설립된 교회도 오래전부터 감 농사를 지었다. 곶감 작업이 시작된 지난달 말 이곳을 찾았다.

삶 속에서 신학하기

감을 깎아서 걸어 놓은 감타래로 소상교회 마당은 온통 주황색이었다. 교회 건물 외벽엔 ‘땅 파고 하늘 심는 사람들’이란 교회 표어가 붙어 있다. 조 목사가 ‘땅에 씨앗뿐 아니라 하늘에 대한 소망을 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표어다.

그는 성도들과 함께 사는 게 목회철학이라고 했다. “함께 산다, 그것밖에 없어요.” 그도 감 농사를 짓는다. 소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도들과 나눠먹고 1년 동안 신세진 분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곶감을 만든다. “함께 곶감 작업을 하는 권사님들은 다 베테랑인데 지금 80세가 넘어 일자리가 없어요. 교회 와서 점심을 같이 해먹고 놀면서 곶감 작업을 즐겁게 합니다.” 그가 성도들과 함께 곶감을 만드는 자체가 ‘삶 속에서 신학하기’가 아닌가 싶다.

조 목사는 자칭 ‘곶감 사령관’이다. 모든 성도들이 생감을 곶감으로 만드는 ‘곶감 농부’이기 때문에 곶감은 성도들의 삶 자체다. 그는 성도들의 가정을 방문해 곶감 맛을 보고 작업과정의 모든 것을 살핀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생감보다 곶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떫은 생감보다 달콤한 곶감이 더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잘 압니다. 그런데도 생감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껍질이 벗겨지고 감타래에 여러 날을 매달려 바람에 날리고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야 곶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련을 거쳐 성도들의 신앙이 깊어지듯 말이죠. 생감이 옛사람이었다면 곶감은 새사람입니다.”

진심 목회 21년

소상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에 소속된 교회다. 50∼60명의 성도 대부분이 감 농사를 짓는 작은 농촌교회이지만 자립교회이다. “교회 1년 예산이 2500만원 미만이면 미자립교회로 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자립이 어렵지요. 예산이 목회자 사례비를 포함해 5000만원 정도 돼야 자립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성도들의 헌신으로 자립교회가 됐습니다.”

경북 구미가 고향인 그는 평생 김천 상주 등 이 주변을 떠나본 적이 없다. 전도사 시절 몇 교회를 옮겨 다니며 사역했고, 상주교회에서 3년 동안 부목사를 지내다 소상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전도사와 부목사 시절 제 의지와 상관없이 담임목사에 의해 임지를 옮겨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목사 대부분이 경험하는 일이지만 교회에 남고 싶어도 목회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떠날 수밖에 없어요. 전 한곳에서 오랫동안 목회하고 싶었어요.”

“20년 넘게 흔들림 없이 한자리에서 농촌목회를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지금 임지가 없는 무임 목사들이 많습니다. 저희 교단만 해도 무임목사가 1500명입니다. 신학교 졸업 후 청빙을 못 받거나 사역하던 곳에서 갈등이 생겨 밀려나면 갈 곳이 없어지는 게 목회자의 현실입니다. 저 역시 잘못하면 밀려날 수 있는 거죠. 그런 마음으로 목회에 임했어요. 그래서 1년 지나고 감사했고, 2년 지나고 감사했어요. 그렇게 21년이 지났어요.”

그에게 겸손함이 느껴졌다. 사실 그동안 여기보다 규모가 큰 교회에서 몇 번의 청빙이 있었으나 사양했다. “사실 청빙은 제가 거절하면 되지만 교회 내 갈등이 생기면 임지를 옮겨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어요. 한곳에서 오랫동안 목회하겠다는 초심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성도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보통 작은교회는 중형교회를, 중형교회는 대형교회를 꿈꾼다. 그러나 그는 어느 곳에 가도 편안한 목회는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목회현장은 어느 곳이나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어디나 똑같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내 신앙이고 신학이기도 해요. 지금 이곳이 하나님이 제게 가장 잘 맞는 곳으로 주신 거라 생각해요.” 그는 이곳에서 양순덕(59) 사모와 함께 목회하며 두 딸을 키웠다. 두 딸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사로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

노래하는 시골 목사

그에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이나 농촌교회 목회자로서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자 단박에 “그런 거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조 목사는 지난해 한국교회를 생각하며 ‘한국교회 홀로아리랑’을 작사했다. 가사에 감사, 애통, 회개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는 지난해 예장통합 경서노회 노회장에 선출됐다. 취임사에 이 노래를 포함시켰다.

“땅의 것 세상 것 빛이 흐려져/소금 등불 맛을 잃고 짓밟힌 교회/화인 맞아 굳은 심령 회개 모르니/촛대 등대 옮길까 정녕 두렵네/엎드려 조아려 남은 자들아/애통하며 울부짖고 주께로 가자/손들자 마음 쏟자 하나님 찾자/우리길 오직 한길 복음뿐이라/아리랑 아리랑 홀로아리랑/하늘 은총 듬뿍 받은 한국교회 황무지 옥토되니/영광의 백성 영원히 온전히 세워갑시다.”(‘한국교회 홀로아리랑’ 중에서)

그는 진심을 담은 노래들을 만들어 자주 부른다. 목회 초심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시골 목사’는 대중가요 ‘개똥벌레’ 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타 교회에서 설교할 때도 목청껏 부르는 노래 중 하나다. 땅을 파는 농부 인생으로 한평생을 살아도 하늘 심는 천국시민이란 걸 잊지 말자는 내용이 유쾌하다.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시골목사 신분을 속일 수 없네/어깨 힘을 줘도 시골목사요/머릿기름 발라도 시골목사라네/낙심 마라 슬퍼 마라 기죽지 마라/시골목사 신세를 한탄하지 마라/아멘 은혜 있어 그분이 붙잡으시니/내 일생이 다하도록 이 자리 감당하리….”(‘시골목사’ 중에서)

‘신학은 동사(動詞)’다. 하나님은 명사(名詞) 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에 함께 하시며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함께 살기 신학’을 ‘진심 목회’로 실천하는 듯했다.

■ 진심에 하나 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은 모세에게 노래를 지어서 백성들에게 부르도록 했다. 신명기 32장 1∼44절에 나오는 이 노래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런 이스라엘을 눈동자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다. 모세는 노래를 마치고 백성들에게 설교했던 율법을 꼭 지켜 행하라고 당부했다.(신 32:45∼47)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늘 한결같다. 하나님이 죄를 지은 백성을 책망하고 벌하신다 하면서도 다시 회복시켜 새 나라, 새 민족, 새 백성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책망하면서도 안타까워 ‘못 견뎌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받아주셨다. 믿는 자는 반드시 구원하시고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승리케 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은 구약성서 이사야·예레미야·에스겔서 등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소상교회 조원회 목사는 ‘모세의 노래’를 통해 성도들을 ‘하나님의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교인들이 잘하는 게 없어도, 회개하지 않았어도 받아주고 사랑하겠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답이 없는 문제’를 풀게 될 때가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머리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다. 바로 이럴 때 조 목사는 성도들에게 “머리가 아닌 무릎으로 응답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야곱이 세겜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벧엘로 올라가 제단을 쌓으라’(창 35:1∼7)고 하셨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곳, 어디로 가든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셨던 곳이다. 조 목사는 넘어졌을 때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말씀으로 일어나게 했던 순간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는 정신을 차릴 때입니다. 늘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벧엘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린 잊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야곱이 환난 날에 자신을 만나주신 하나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은혜를 주신 그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을 찾길 바랍니다.”

상주=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