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엔터스포츠] 쌍둥이야, 맴 단디 묵어라… 류중일 ‘근성야구’ 선언

입력 2017-11-03 05:01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이 지난달 24일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이던 2011∼2014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일군 류 감독은 ‘야통(야구대통령)’으로 불린다. 류 감독은 “포기하지 않는 야구로 팬들을 만족시켜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천=최현규 기자

‘야통(야구대통령)’ 그가 돌아왔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이던 2011∼2014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 2015년 리그 우승을 일군 명장 류중일(54) 감독. 최근 1년간 기술고문으로 현장에 물러나 있었지만 대구에서만 31년 야구인생을 보낸 그의 첫 외도는 LG 트윈스에서 하게 됐다. 지난달 13일 취임한 류 감독은 LG와 3년 21억원에 계약하고 지휘봉을 잡았다. 올 한국시리즈를 우승시키고 지난 1일 3년 재계약(총액 20억원)한 김기태 KIA 타이거즈 감독보다 1억원 많은 국내 프로야구 최고액 감독이다. 그에 대한 구단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다.

류 감독 지도 하에 달라질 내년 시즌 LG의 모습은 야구팬들의 관심사항이 됐다. 궁금증 해소를 위해 지난달 24일 팀이 훈련 중인 경기도 이천 LG챔피언스파크를 찾았다. 류 감독의 얼굴은 취임식 때보다 많이 거칠어져 있었다. 류 감독은 “1년 동안 쉬면서 얼굴도 좋아졌고, 피부 시술도 받았는데 감독이 된 그날부터 밥이 안 넘어가더라”고 멋쩍어 했다. 새로운 팀을 맡게 된 부담감이 상당한 듯했다. 그의 시선은 인터뷰 중간 중간에도 연신 수비훈련을 하는 선수들에게 있었다. 그는 특유의 거친 경상도 사투리로 “새로운 생활을 하는데 맴(마음) 단디(단단히) 묵어야(먹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류 감독이 너무 진지한 것 같아 “그래도 ‘야통’이 돌아와 내년 야구가 재밌을 것 같다는 사람이 많다”고 하자 그제야 엷은 미소가 드러났다. 야통은 4년 연속 통합 우승, 5년 연속 리그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류 감독에 대해 팬들이 선사한 별칭이다. 그는 “맨날 선수빨이라고 하고, 매년 시험대라고 하더만 이번에는 팀을 옮겼으니 또 시험대라고 하겠네”라고 호탕하게 웃었다. 삼성 시절 “선수들 때문에 우승을 많이 했다”는 비판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듯했다.

그의 말처럼 내년은 진짜 류 감독의 시험대다. 선수·코치·감독으로서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를 단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류 감독은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팀을 옮기면 마음가짐이 새로울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맡고 나니 부담감이 엄청났다”고 했다. 이어 “LG는 서울의 자존심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팬을 두고 있고, 열정적인 팬이 많다. 어떻게 이분들을 만족시킬지 걱정”이라고 했다.

솔직하고 신랄하게 자신이 맡을 팀을 평가하기도 했다. 류 감독은 “LG가 팀 평균자책점 1위인데도 가을야구를 못한 것은 타력이 약했고, 도루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수비력이 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야구는 디펜스(수비)다. 일본 고치 마무리 훈련에선 수비 훈련을 중점적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수들이 너무 젊은 것도 고민거리라고 했다. 그는 “이 선수들을 어떻게 주전감으로 만들까 매일 밤 고민한다. 그래도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다. 마무리훈련에서 옥석을 가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야수 백승현과 장준원, 윤대영은 유망한 자원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믿음의 야구’다. 류 감독은 투수 보직과 타순을 고정시키고 한 번 믿은 선수는 부진하더라도 믿고 가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철밥통 야구’라는 비난을 받았다. 류 감독은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 박영길, 김성근, 백인천, 김용희, 김응용 등 내로라하는 명장을 모신 것이라며 그들의 장점을 접목한 ‘믿음의 야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감독은 “1번 타자가 할 일이 있고 2번 타자가 할 일이 있다. 나는 자주 타선과 포지션을 바꾸는 야구가 싫다. 보직을 정확하게 주면 선수들은 책임감을 더 가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 시절에 보였듯 믿음을 배신하고 나태해진 선수에게는 가차없이 대했다. 그는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던 차우찬과 손주인이 선수들에게 ‘류 감독이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알리는 홍보맨이 돼야 할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또 하나 신경쓰이는 것은 바로 선수단 관리다. 연고지 서울은 유흥거리가 많은 곳인데 젊은 선수들이 유혹을 받기 쉽다. 같은 잠실을 홈으로 쓰는 두산 베어스에 비해 LG가 성적이 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관리 소홀이라고 보는 듯했다. 류 감독은 “삼성 시절에 서울 원정 갈 때 선수들에게 너무 돌아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며 “LG는 젊은 선수가 더 많기 때문에 정신교육을 단단히 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내년 목표에 대해서는 수치로 말하기보다 근성 있는 야구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했다. 그는 “LG가 그동안 팬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성적을 냈다”며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접목시키겠다. 팬들이 ‘LG가 많이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천=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