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개혁자들의 주장을 다섯 가지 ‘오직’(라틴어 sola)으로 요약한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 그것이다.
개혁의 근거와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르틴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7절에 근거해 구원이 면죄부를 포함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혁운동의 산물로 탄생한 교회는 지난 500년간 ‘오직 믿음으로’라는 구호를 꾸준히 외쳤다.
문제는 이 말의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믿음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가. 현대교회는 믿음을 ‘신념’이란 관점으로 강조해 왔다. 물론 믿음에 신념이란 요소가 들어있지만 만일 믿음을 인간의 신념으로만 정의한다면 의지나 신념이 강한 사람이 믿음이 크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결과적으로 은혜와는 정반대 개념을 주장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믿음을 신념으로 정의한 결과 교회의 역사는 종교적 열심당인 셀롯인과 광신자들이 십자군운동이나 마녀사냥 같은 반복음적 행위를 당당하게 밀어붙였던 부끄러운 과거로 점철돼 있다.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혀 살기등등한 싸움꾼이 된 사울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교회를 핍박한 오류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믿음은 인간의 의지에 기반을 둔 신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존하는 ‘신뢰’이다. 신념이 강한 게 좋은 믿음이 아니고 내 의지가 흔들릴 때도 결코 나를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으실 그분께 기대는 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다. 믿음과 신념을 동일시하는 근거로 종종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마가복음 9장 23절이 거론된다. 그러나 그다음 구절(24절)에 보면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나와 있다. 이것에 비춰보면 믿음이 신념 아닌 신뢰임을 알 수 있다.
9장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아이에게 들었던 귀신을 쫓아내자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28절)라고 묻는다. 29절에서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답하셨다. 즉 우리 신념이 기적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고, 그 신뢰가 믿음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개혁자들이 ‘오직 믿음’에 덧붙인 ‘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은혜’는 믿음이 신념 아닌 신뢰임을 선명히 드러낸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구원의 공로에 기댐으로 가능한 것이다. 신념과 의지로 성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는 철저히 하나님 은혜에 기반한다.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존하는 신뢰는 우리를 오만불손한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며 겸허한 섬김의 자리로 인도한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신념에 가득 찬 승리주의와 무례한 종교행위가 선교와 전도의 이름으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작은 믿음, 크신 하나님’이란 책을 통해 우리에게 위대한 믿음(신념)이 필요한 게 아니라 위대한 하나님에 대한 겸허한 신뢰가 요구된다고 말한 톰 라이트의 일침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 요즘이다.
정민영 (성경번역선교회 선교사)
[시온의 소리]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입력 2017-11-03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