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질투한 조각가 ‘자코메티’… 인간 실존의 모습을 빚다

입력 2017-11-02 05:10
1960년 프랑스 파리의 스튜디오에서 흉상을 연구하는 59세의 알베르토 자코메티. 독자적인 길을 모색한 끝에 자신만의 인체 스타일을 확립한 자코메티는 50대 중반부터 명성을 누렸다. 그럼에도 작업하는 순간만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대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 제공
‘앉아 있는 남자’(일명 로타르 좌상)
최삼규 국민일보 사장(오른쪽)과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 협약식을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자코메티, 누구인가

피카소·사르트르·베케트 등과 교류
2차 세계대전 겪으며 죽음의 공포
가늘고 긴 인체 통해 위기·불안감 표현
작품 곳곳 묵상·성찰·종교성 감돌아
‘가리키는 남자’ 현존 최고액 조각작품
2015년 경매서 1억4128만 달러 낙찰


“싫습니다. 친구로는 좋아하지요. 하지만 (내가 전속 작가로 있는) 갤러리에 그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1950년 프랑스 파리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려가던 중견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는 전시할 갤러리를 수소문 중이었다. 갤러리 루이스레리스를 추천받았지만 무산됐다. 당대 거장인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입성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조각가 자코메티. 그는 ‘조각의 피카소’로 불린다. 글로벌 미술매체인 아트넷에 따르면 지난 9월말 현재 세계 경매가 상위 12위에 조각가로는 자코메티가 유일하게 포함돼 있다. 그것도 ‘가리키는 남자’ ‘걸어가는 사람’ ‘전차’ 등 3점이나 된다. 점수(點數)로 능가하는 이는 1위 기록 보유자로 총 4점이 오른 피카소뿐이다.

자코메티는 30세에 그를 만나 20년 이상 우정을 다졌다. 자코메티가 ‘괴물’이라고 불렀던 피카소는 그의 천재성을 알아봤다. 자신의 두상 제작을 부탁할 만큼 신뢰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 보고 싶은 두 사람으로 앙드레 말로와 자코메티를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코메티의 명성이 올라감에 따라 유치한 장난으로 화를 돋우기도 했다는 일화들이 전해 내려온다.

피카소가 질투한 조각가 자코메티. 그는 스위스의 개신교 마을 스탐파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여 제네바 미술학교와 미술공예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림이냐 조각이냐의 기로에서 조각을 택한 그의 변이 놀랍다. “가장 이해하지 못한 영역이 조각이기에 그것을 하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22년 파리로 유학간 그는 당시 득세하던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했다. 그렇게 10여년을 보내며 1934년 미국 뉴욕에서 추상조각전을 열기도 했던 그는 1935년 무렵 초현실주의와 결별했다. 형상을 찾아 외롭고 치열한 모색의 길에 나선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며 콩알만한 조각 작품을 하기도 했다. 궁핍이 지배했지만 그는 말했다. “언제나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살면서 배웠기에 실패가 두렵지 않았다.” 그가 피카소와 장 폴 사르트르, 사뮈엘 베케트 등 일생의 예술 동지를 만난 시기도 이 10여년의 암중 모색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모두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대전환의 전기가 됐다. 독일 공습으로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치는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그가 세상을 향하는 시선은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미증유의 전쟁을 겪은 세대,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 인간의 폭력성을 경험한 세대인 그는 예술가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인체 작품은 점점 키가 커지고 날씬해졌다.

그러더니 마침내 ‘가리키는 남자’(1948)가 등장했다. 이 남성상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걷는 행위의 등장이다. 실물 크기에 똑바로 서서 걷는 이 조각이야말로 폐허를 딛고 성큼성큼 실존을 향해 나아가는 시지푸스적 당당함이다. ‘가리키는 남자’는 2015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4128만 달러(약 1575억원)에 팔리며 현존 가장 비싼 조각이 됐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절친’ 사르트르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탐색, 실존주의적 참여의 탁월한 사례로 꼽았다”고 전기(‘자코메티, 영혼을 빚어낸 손길’)를 쓴 미국인 제임스 로드는 전한다. 미술비평가인 국민대 최태만 교수는 “자코메티 조각은 철사처럼 가늘고 기다란 인간의 형상, 체적을 비운 인체를 통해 20세기 중반 인류가 겪은 실존적 불안과 위기감을 잘 드러낸다”고 평했다.

자코메티의 작품세계에는 성찰의 태도가 감돈다. 최 교수는 “평생의 작업 동반자인 동생 디에고의 두상이나 흉상 작품들이 그렇다”면서 “로댕의 ‘걷는 사람’이 ‘세례 요한’을 형상화했는데, 자코메티는 로댕 조각이 갖는 몸집을 비워냈다. 그리하여 외양이 아닌 정신의 승리, 영원을 향한 성찰의 자세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1960년 59세의 자코메티는 생애 최고의 걸작을 발표한다. 뉴욕의 체이스맨해튼은행 빌딩 앞 광장에 설치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어가는 사람’이 그것이다. 모호하지 않고 어디로 가는지 분명해 보이는 확고한 태도, 절정에 이른 남성적인 역동성,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다.

그는 1962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조각부문 대상을 받으며 전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생의 절정기인 65세에 심장병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앉아 있는 남자’(일명 로타르 좌상)를 유작으로 남긴 채. 로타르 좌상은 그가 이 시대에 요구하는 성찰의 메시지다.

■ 어떤 작품들이 오나…
조각·드로잉·판화 걸작 총망라… 질과 양 ‘역대급’

‘서 있는 아네트’·유작 ‘앉아 있는 남자’ 등
대표작 한자리에… 작가 예술세계 조망


이번 전시는 2m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크기의 ‘걸어가는 사람’ 한 점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조각(41점) 회화(11점) 드로잉(26점) 판화(12점) 사진(26점)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조각가이자 화가, 판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총 116점의 어마어마한 물량도 물량이지만 자코메티 최고작과 예술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조각 작품이 빠지지 않는다. 아내 아네트를 형상화한 ‘서 있는 아네트’(1954), 유작이 된 ‘앉아 있는 남자’(일명 로타르 좌상), 남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한 ‘남자 흉상’ 등 자코메티 조각의 대표작들이 이번에 온다.

이처럼 전대미문의 품격을 갖춘 조각 블록버스터 전시는 국민일보와 공동 주최하는 프랑스 파리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의 국가적 권위와 풍부한 컬렉션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은 프랑스 파리와 스위스 취리히 두 군데에 있다. 이 가운데 파리 재단은 200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은 국립재단이다. 자코메티의 아내 아네트 자코메티에게서 기증받은 5000여점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재단은 작품의 프로모션 보급 보존 등을 책임지는데, 외부 대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