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비엔날레 공화국에 부치다

입력 2017-11-01 17:30

나는 ‘해남 마니아’다. 지난해 여름 취재차 전남 땅끝마을 해남을 찾았다가 해풍이 감싸는, 넉넉한 풍광에 반했다. 그 품이 그리워 지난주말 또 갔다. 그곳에서 놀란 건 지금도 향유되는 동양화 문화였다. 대흥사 아래 유선여관은 객실마다 수묵의 액자와 족자가 걸렸다. 병풍도 뒀으나 그 가치를 모르는 손님들이 젖은 빨래를 말리는 바람에 놀라서 치웠다고 주인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었다. 그런 풍류는 남도 전체의 것으로 보였다. 해남이든, 진도든, 목포든 식당 하나를 들러도 동양화 액자가 걸려 있기 마련이었다. 미술시장에서 동양화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세였지만 하루아침에 새마을운동 하듯 내팽개쳐졌다. 그렇게 버린 전통의 명맥이 기신기신 이어지는 곳이 남도였다.

전남도가 정부 공식 행사로 ‘2018년 전남 국제수묵화비엔날레’를 갖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시큰둥했다. 가을이면 대한민국이 단풍 축제 하듯, 비엔날레 공화국이 된다. 또 비엔날레라니. 전남도는 내년 본 행사에 앞서 한 달간 목포와 진도, 해남 일원에서 ‘2017 전남 국제 수묵 프레비엔날레(10.13∼11.12)’를 열고 있다. 놀러 갔다가 직업병이 도져 둘러보게 됐다.

중국에서 시진핑 2기 체제가 출범했던 베이징 인민대회당. 도열한 지도부의 배경이 된 그림은 거대한 필묵의 산수화다. 서구를 향해 당당히 중국 굴기(?起)를 외치는 국가 이미지다. 우리가 헌신짝처럼 버린 전통이 중국에선 용틀임치는 현장 같았다. 그래서 새삼 흥미를 느끼고 좀 자세히 전시장을 둘러보고 곱씹게 됐다. 우선 존재의 이유. 독창성은 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따라한 듯 디자인미술제를 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지만, 수묵화는 누구도 손대지 않은 영역이다. 케케묵은 것이라고 생각해 거들떠보지 않은 수묵을 덥석 잘도 물었다. 왕(헌종)이 사랑한 화가,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2∼1897)의 본거지 ‘운림산방’(전남 진도)이 있는 지역적 상징성도 있다.

역발상치곤 작명에서 치열성이 보이지 않는다. 왜 수묵화이고, 비엔날레인가. 영어에서 정원을 뜻하는 ‘가든’은 한국으로 건너와 갈비집의 대명사가 됐다. 전위적 미술행사인 비엔날레는 한국으로 건너와 그렇고 그런 미술축제 이름이 됐다. 빛바랜 그 이름을 쓴 건 출범 과정에서 고민이 뜨겁지 않았다는 것으로 비친다. 작명은 곧 철학이고, 지향성이다.

굳이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여야 하는가. 유럽 최대의 미술행사로 부상하는 뮌스터조각프로젝트는 10년마다 열린다. 행사 주최 측과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10년마다 해야 귀하다”고. 비엔날레라는 이름 뒤엔 표심에 휘둘리는 지자체의 안이한 발상, 스펙 쌓기를 하려는 미술인의 공모가 읽힌다.

이번 행사에선 ‘수묵’ 개념의 외연이 여전히 ‘회화’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 본 행사의 공식 명칭이 ‘수묵화’비엔날레임에도 불구하고 사전행사명을 ‘수묵’비엔날레로 함으로써 회화로 한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비쳤음에도 말이다. 외국인 작가들도 불러 종이와 먹을 주고 맘껏 놀아보라고 했지만 창작의 결과는 대부분 평면에 머물렀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혀 먹의 정신을 퍼포먼스로까지 확장한 게 1961년이다.

수묵의 정신과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문인화에서 그림은 그리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림을 인문학적 서예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서예의 정신까지 아울러야 한다. 이번 행사가 찾는 사람이 없어 생산도 잘 안 되는 한국산 먹에 인공호흡기를 대는 것으로만 자족하면 안 된다. 1년 만에 뚝딱 비엔날레가 탄생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례적으로 사전 행사를 치르는 태도는 고무적이다. 앞으로 고쳐나가겠다는 자세로 읽혀서다. 뮌스터조각프로젝트가 정착이 된 것은 3회째인 1997년부터다. 더 고민하길 부탁한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