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문학이 서구 모더니즘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아시아 근대문학이 서양 문화 유입으로 태동했다는 걸 상식으로 여기는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얘기다. 미국 시인이자 앵커리지대 교수인 잭 로고는 오는 4일까지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진행되는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발제할 예정이다.
그는 2일 ‘동아시아의 문학이 서구의 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발표할 포럼 발제문에서 “동아시아 문학은 서양 시에 광범위한 역할을 했다”면서 한·중·일의 문학 유산에 영감을 받아 작품 세계를 구축한 대표적 작가 3명을 소개했다. 서구 현대시에 큰 영향을 준 러시아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 프랑스 모더니즘 시인 장 폴렝, 미국 ‘비트 세대’ 대표 작가 잭 케루악이다.
로고는 서양의 모더니즘 시에서 발견되는 현실성 감각성 간결함이 동아시아 문학의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아흐마토바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중국 고전 시선집 ‘옥의 서’ 등 동아시아 시선집을 보았다고 한다. 이어 1912년 러시아 문단을 경향을 뒤바꾼 모더니즘 경향의 첫 시집 ‘저녁’을 출간했다.
‘문을 잠그지 않았다/ 촛불도 켜지 않았다/ 당신은 모르지, 관심 없지/ 지친 내게 힘이 없다는 것을.’(‘백야’ 중) 첫 시집에 수록된 시다. 로고는 “아흐마토바는 자신의 실제 경험과 감정을 일상적인 언어로 썼다”며 “정인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황이나 그 표현 방식이 모두 동아시아 시 영향을 받은 개인 서사”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상징주의가 강했던 기존 문단의 조류를 반전시켰다. 폴렝은 일본의 짧은 시 하이쿠처럼 짧은 행으로 이루어진 시로 살아있는 존재들의 운명을 스케치했다. ‘그들을 따라가는 개는/ 이제는 밥그릇이 없다/ 개는 늙었다/ 아이들과 같은 나이라서.’(‘아이들과 있는 개’ 중) 폴렝의 시다. 미국 현대 문학에 큰 영향을 준 케루악은 ‘텅 빈 야구장/ 울새 한 마리/ 벤치 따라 깡충 뛰네’와 같은 하이쿠를 수천 개나 남겼다.
일본 시인 사가와 아키는 같은 포럼 발제에서 “고은의 시는 사상적으로도 깊고 인간적인 폭이 넓으면서 날카로운 비판력을 견지해 개인적으로 많이 배웠다”고 소개했다. 사가와는 “일본이 위안부 등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동아시아) 평화보다 대립을 선동하는 상황이 창피하다”고도 했다. 중국 시인 둬둬와 한국 시인 정철훈도 이 포럼에 함께한다.
이번 페스티벌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월레 소잉카를 비롯해 세계적 문인 9명과 고은 현기영 등 한국 문인 17명이 참여한다. ‘아시아의 아침’이라는 제목으로 아시아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승화하는 문화 행사다. 참석자들은 1일 국립5·18민주묘지 방문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2일에는 강연 및 포럼이 펼쳐진다. 4일에는 소잉카와 고은의 특별대담이 있다. 제1회 아시아문학상 시상식도 열린다. 방선규 아시아문화전당장 직무대리는 “전당이 앞으로 계속 이 행사를 이어가 아시아 대표 문학대회라는 명성과 권위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서구 모더니즘 詩에서 왜 한시 느낌이 날까?…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 개막
입력 2017-11-02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