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뇌물로 쓰인 ‘국정원 특활비’… 종착지는 어디?

입력 2017-11-01 05:00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아 유용한 혐의로 체포된 청와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왼쪽)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들어서다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함께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다. 뉴시스

사실상 실세들 ‘돈줄’ 역할
靑 주변서 만나 전달 드러나
朴 전 대통령 ‘공범’ 타깃 수사
옛 與에 흘러간 흔적 나오면
국정원發 게이트 비화 가능성

박근혜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특수활동비 40억원 이상을 청와대 핵심 인사들에게 뇌물로 상납한 혐의가 잡히면서 국정원 수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국정원이 정치적 목적으로 공작활동을 한 것과 국민 세금인 예산을 빼돌려 실세들 ‘돈줄’ 역할을 한 사안은 질적으로 다르다.

검찰 수사는 국정원 돈이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 등에게 전달된 구체적인 경위와 목적, 배후 등을 밝히는 데 집중되고 있다. 다수의 청와대 인사들이 연루된 점에 비춰 지난 정부 청와대 인사들이 특별한 죄의식 없이 국정원 특활비를 나눠먹기 했을 공산이 큰 상황이다. 자금의 최종 사용처 수사 결과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박근혜정부가 대기업 등을 압박해 특정 친정부 단체를 지원토록 한 ‘화이트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국정원 특활비와 관련한 수상한 흐름을 발견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4년간 국정원 예산·인사를 총괄한 이헌수 전 기획조정실장을 거의 매일 불러 추궁한 끝에 “이·안 전 비서관이 먼저 현금을 요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이 31일 남재준(2013년 3월∼2014년 5월) 이병기(2014년 7월∼2015년 3월) 이병호(2015년 3월∼2017년 6월) 전 원장 등 지난 정부 4년간 국정원장을 지낸 3명을 전원 압수수색한 건 국정원의 상납 행태가 정권 초기부터 장시간, 반복적으로 이뤄진 사실이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들 국정원장은 이 전 실장을 통해 원장 개인 특활비에서 매달 1억원씩 상납금을 마련하게 하고, 이 전 실장에게 직접 돈 배달도 맡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실장은 차량에 5만원권 현금 다발을 싣고 청와대 주변으로 간 뒤 이·안 전 비서관을 청와대 바깥에서 접촉해 돈을 건넸다고 한다.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은 조·현 전 정무수석으로 가는 돈 심부름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의 국정원 특활비 전용 구습이 박근혜정부에서 되살아났다는 뜻이다. 꼬리표 없는 국정원 특활비를 욕심낸 청와대 실세들과 거센 개혁 요구 속에 청와대 지원이 필요했던 국정원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뒷거래일 수 있다. 검찰은 우선 ‘국정원 측이 현안이나 예산 배정 등의 편의를 요청하며’ 뒷돈을 상납한 혐의를 이·안 전 비서관 체포영장에 담았다.

검찰은 청와대 인사들이 국정원이 준 돈을 착복해 활동비 등 사적 용도에 썼을 가능성을 살펴보는 중이다. 국정원 돈이 청와대를 거쳐 당시 여당 등으로 흘러들어간 흔적이 나오면 국정원발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은 “아직 정치권 관련 정황은 나온 게 없다”고 말했다.

수사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 전 대통령의 오랜 심복인 이·안 전 비서관이 상납과 유용 사실을 보고했거나 묵인 아래 범행한 게 확인되면 박 전 대통령도 공범으로 묶일 수 있다. 검찰은 이르면 1일 이·안 전 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