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장 자리놓고 각축
금융당국 불편한 속내
정치권도 비판 목소리
금융권에 ‘올드보이 바람’이 불고 있다. 주요 협회장에 관직을 떠난 지 꽤 된 고위관료 출신이 임명되거나 물망에 오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까마득히 높은 선배들이 금융협회장에 거론되자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불편하다”는 뒷말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와 향후 협회장 선임 과정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손해보험협회는 31일 총회를 열고 김용덕(67)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재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김 전 위원장은 2007∼2008년에 장관급인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다. 행정고시 15회로 최종구(60·행시 25회) 금융위원장보다 한참 선배다. 장관급 관료 출신이 손보협회 수장 자리에 앉기는 1989년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 이후 28년 만이다.
‘올드보이 바람’은 차기 은행연합회장 선출 과정에서도 거세다. 홍재형(79) 전 경제부총리가 후보로 부상했다. 후보군인 김창록(68) 전 산업은행 총재, 윤용로(62) 전 외환은행장도 고위 관료 출신이다.
금융당국은 각 금융협회가 업계의 이익 대변을 위해 최적의 인물을 선출하는 것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 위원장은 이날 김 전 위원장이 손보협회장으로 선출된 것에 대해 “경력, 연세, 활동력, 성품, 업계와 당국의 관계를 감안해 적임자로 생각되는 분을 회원사들이 뽑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내부에선 금융위원장보다 행정고시 기수가 높은 ‘대선배’들이 협회장으로 오는 것에 속내가 편치 않다. 민간협회에 ‘관피아’(관료+마피아)가 오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 현장에 대응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당에서도 ‘올드보이의 귀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3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례까지 거론하며 “이런 상황을 방치하면 대통령에게 누가 되고 당사자도 인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젊은 금융인들이 뛸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종구 위원장은 “이런 분들이 협회장에 오면 제가 일할 수 없다고 직언을 하라”는 최운열 의원의 주문에 “그런 분들이 올 우려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용덕 신임 손보협회장의 경우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캠프 정책자문단에 참여해 ‘보은 인사’ 논란도 일고 있다.
반면 업계에선 반기는 분위기다. 손보업계에는 보험설계사의 근로자 인정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요즘처럼 외풍이 심할 때 업계로서는 든든하다”고 말했다. 경륜을 살려 금융당국과 업계 간 관계를 원활히 조율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31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지원(55) 한국증권금융 사장을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정 신임 이사장은 재무부와 재정경제원, 금융위를 거쳤다. 거래소 노조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등 낙하산 논란도 여전했다. 이사장 선임 과정에서 서류 결과 발표를 앞두고 돌연 추가 공모를 발표하면서 ‘윗선 개입설’ 등 잡음이 일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금융권 올드보이 바람… 당국 “허, 참…”
입력 2017-11-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