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요추천자 검사 등
무리한 진행 인정 어렵다”
유족측 “연대 의대 출신이
재판에 참여… 타당치 않다”
중대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병원 측 동의 없이도 분쟁조정 절차가 가능한 일명 ‘예강이법’(신해철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던 고(故) 전예강 양의 유족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패소했다. 유족측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이원신)는 전양의 유족이 의료상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세브란스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연세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요추천자 검사의 시행으로 인해 전양에게 저산소증이 발생했다거나, 전양이 저산소증으로 인해 심정지를 일으켰음을 추정·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의료진이 전양의 증상을 토대로 뇌수막염을 의심하고 진단을 위해 요추천자 검사를 실시한 것에 대해서도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요추천자는 척추에 바늘을 넣어 척수액을 추출하는 시술이다.
재판부는 의료진이 전양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요추천자 검사를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원고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당시 전양의 혈액검사 결과를 고려해도 요추천자 검사가 가능한 상태였다는 감정의 의견이 있었다”며 “전양의 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검사를 지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전양에게 수혈처방이 지연됐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소 의사를 밝혔다. 유족측은 “병원 의료진이 당시 수혈시간과 분당 맥박수 관련 진료기록을 허위기재해 형사처벌을 받았는데도 민사재판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며 “항소심에서 적극 다투겠다”고 말했다.
유족측은 이번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에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판사가 포함돼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은 “의료사고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피고 측과 동일한 의대를 졸업한 동문인 판사가 해당 의료소송에 참여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며 “해당 사실을 미리 알리고 재판을 계속 진행해도 되는지 확인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법원 관계자는 “유족 측에서 문제 삼은 부분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전양은 2014년 1월 코피와 어지럼증으로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저혈량성 쇼크, 상세불명의 출혈로 7시간 만에 사망했다. 1년차 전공의 2명이 5차례 요추천자 검사를 시도했지만 척수액을 뽑지 못했다.
유족은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신청을 했지만 병원의 거부로 각하돼 4억5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측은 “신속한 응급수혈이 최우선인 상황이었는데도 3시간4분이 지나서야 수혈이 이뤄졌다”며 “미숙련된 요추천자 시술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전양 사건을 계기로 유족과 시민단체가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운동을 펼친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일명 ‘예강이법’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의료진 형사처벌 받았는데… ‘예강이’ 민사소송서 졌다
입력 2017-10-31 18:52 수정 2017-10-31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