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하 <14> “목사가 무능해 병을 못 고쳐” 타목회자 설교에 상처

입력 2017-11-02 00:00
루게릭병에 걸렸지만 아내는 여전히 나를 둘도 없는 목사님으로 인정해줬다. 아내와 함께 쓴 책 ‘지금 행복합니다’ 출간 후 CGN TV에 출연해 개그맨 이홍렬씨(왼쪽)와 기념 촬영한 모습.

루게릭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후원하고 기도해주는 분들, 우리가 후원하는 아이들, 그리고 딸 고은이와 아들 동엽이에게 미안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빨리 병이 나아 이 빚을 갚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미안한 마음이 쌓여갔다.

하루 24시간 남편을 간호하는 아내에겐 미안한 마음조차 표현하지 못했다. 때로는 내 몸의 불편함만 토로했다. 아내라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나를 위해 살아야 할 사람인 양 말이다.

아내가 전도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험장으로 가던 날, 나는 혼자 집에 있을 수 없어 아내와 함께 움직였다. 시험시간 3시간여를 차에서 기다렸다. 아내는 내 걱정을 했는지 허겁지겁 시험을 치르고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내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다급한 목소리로 “소변이 마려운데 차 안에서 당신만 기다렸어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엔 원망인지 반가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내에게 “아내가 임신하면 남편도 같이 입덧을 한다고 하잖아요. 내가 오늘 그런 것 같아. 아무튼 잔디밭 위를 거니는 까치가 부러운 하루였어요”라고 말했는데, 실제 그랬다.

아내는 그런 내 말 한마디에 기뻤고 평온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리고 “난 당신이 이런 모습으로라도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다른 누구보다 나에게 당신은 ‘둘도 없는 목사님’이에요”라고 말해줬다.

아내의 말에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남자인 듯 미소를 지었다. 루게릭병이 주는 고통조차 아내의 아가페 사랑 앞에선 보잘것없어 보였다.

얼마 후 부흥회에 아내와 함께 참석했다. 3일간 열렸는데 장소가 하필이면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이라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이런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작 은혜를 받으려 참석한 집회에서 상처만 쌓였다. 설교하는 목사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무능력한 나를 자책하는 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질병이 치유됩니다.” 설교자가 그렇게 말할 때 마치 ‘치료를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다’는 말로 들렸다.

“요즘 목회자들, 능력이 없어. 그러니 병을 고칠 수도 없어”라고 말했을 때는 ‘내가 참 무능력한 종이구나’ 싶어서 부끄러웠다. 그러나 누구보다 힘들어 한 사람은 아내였다. 아내는 그때 느낀 마음을 글로 남겼다.

“나아만 장군을 생각한다.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요단강에 들어갈 때 차라리 낫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얼마나 병을 벗어던지고 싶었으면 목숨만큼 소중한 권위조차 내려놓았을까. 집회 참석 첫 시간부터 내 속에선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끓어올랐다. 하지만 주님과 약속한 자리를 지켜야 했다. 내겐 누구와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람, 남편을 위해 생명을 아낌없이 드릴 것이다.”

아내가 남긴 글대로라면 나는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큼은 ‘유능한’ 목회자인 셈이다. 무엇보다 착한 아내와 동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