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국정원, 우리법연구회 상대 심리전 벌였다”

입력 2017-10-30 21:19 수정 2017-10-30 23:24

국정원 개혁위, 조사 결과 발표

활동 내용 언론사에 전달
온라인서도 각종 댓글 공작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업
朴정부 국정원이 핵심 역할


이명박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상대로 심리전을 벌이는 등 사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보수단체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국발협) 설립을 지시하고 이 단체 활동에 63억여원의 자체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국정원이 핵심 역할을 한 과정도 공개됐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개혁위)는 30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개혁위에 따르면 원세훈 전 원장은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좌파 판사들의 여론몰이식 정부 흔들기 움직임에 대응하는 심리전을 전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신영철 전 대법관이 촛불집회 관련 재판에 간섭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시기였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같은 해 8월부터 보수단체와 협조해 연구회 해체 여론 조성에 착수했다. 언론사에 회원 명단을 전달하고, 기자회견 등 보수단체의 각종 활동을 유도했다. 온라인 댓글 공작도 벌였다. 개혁위는 “국정원이 이런 심리전을 통해 사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이 국발협을 사실상 국정원 외곽단체로 운영해 왔다는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국정원은 원 전 원장 지시에 따라 2010년 1월 국발협을 설립했다. 2014년 1월 이 단체가 해산될 때까지 국정원은 이 단체에 예산 63억여원을 사용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1억원, 한진·현대차·하나은행 등으로부터 총 1억9000여만원을 받아 전달했다. 사실상 경비 대부분을 국정원이 지원한 셈이다. 개혁위는 국가정보원법상 정치관여 금지 위반 혐의로 원 전 원장과 박승춘 전 국발협 회장을 검찰에 수사 의뢰할 것을 국정원에 권고했다.

201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하고 민주화 운동을 ‘종북’으로 묘사한 국가보훈처의 안보교육용 영상자료도 국정원이 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근혜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업에서 국정원이 핵심 역할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국정원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임명 직후인 2013년 8월 ‘문화예술계 좌성향 세력 활동 실태’라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보고했다. 김 전 실장은 그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문체부는 국정원에 8500여명의 인물 검증을 요청했다. 국정원은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를 선별해 348명을 ‘문제 인물’로 통보했다. 개혁위는 이 중 181명의 실명을 확인했고, 특검이 문체부에서 압수한 블랙리스트와 명단이 대부분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국정원은 2014년 3월 ‘문화계 내 좌성향 세력’도 청와대에 보고했다. 이준익 감독이 대표로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15개 단체와 249명의 문화예술계 인사가 A·B·C등급으로 분류됐다. 신경림 시인 등 작가들과 박찬욱·봉준호 등 영화감독, 김구라·김제동 등 방송인들이 포함됐다. 나영석 PD도 ‘좌파 세력’으로 분류했다.

국정원이 CJ에 압력을 행사한 정황도 확인됐다. 국정원은 2013년 8월 “CJ 좌경화의 원인은 ‘친노의 대모’ 이미경 부회장”이라면서 “정부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CJ에 시정을 강력히 경고하고 과도한 사업 확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렸다.

개혁위는 다만 국정원이 헌법재판관과 대법원장 등 사법부를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로 인정할 만한 사유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글=김판 기자 pa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