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키워드는 ‘왝 더 독’… ‘워라밸’ 세대 주목해야

입력 2017-10-31 05:01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30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8’을 소개하고 있다. 미래의창 제공
김난도 ‘한국의 트렌드’ 흐름과 전망

“희망이 옅어진다는 생각에
‘오늘을 즐기자’ 소비 더 늘어
젊은층, 작지만 확실한 행복 추구”

내년 ‘왝 더 독’ 현상 심화될 듯


“지난 10여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이런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희망이 사라지니 ‘일단 오늘을 즐기자’는 식의 현재지향적인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거죠.”

김난도(54)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30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할 때 행복하냐고 물으니 편의점에서 비싼 도시락과 수입 맥주 사서 마실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더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니 젊은이들부터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을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간담회는 김 교수가 주도하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18’(표지·미래의창)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김 교수는 책에서 2017년 국내 시장의 변화상을 정리하면서 내년에 한국 사회를 뒤흔들 트렌드가 무엇인지 전망했다.

김 교수가 이런 작업을 벌이기 시작한 건 2007년부터다. 당시 그는 한국 사회의 소비 트렌드를 키워드로 정리한 ‘올해의 10대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했다. 이듬해부터는 다음 해 시장 변화를 전망한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트렌드 코리아 2009’가 첫 책이었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은 이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인 셈이다.

들머리엔 2007년부터 내년까지 국내 시장을 뒤흔들었거나 앞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는 트렌드를 정리한 내용이 담겨 있다(표 참조). 김 교수는 “희망이 사리지고 있어서인지 내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이나 러시아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리는데도 예전처럼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아는 독자라면 김 교수가 내놓은 2018년 트렌드 전망에 눈길이 쏠릴 듯하다. 그가 내놓은 내년 키워드는 ‘왝 더 독’. 내년 10대 소비 트렌드의 영문 앞 글자를 조합한 용어(WAG THE DOGS)이기도 하다. 그는 ‘왝 더 독’을 키워드로 선정한 이유로 사은품이 본 상품보다, 소셜미디어(SNS)가 대중매체보다, 1인 방송이 주류 매체보다, 카드 뉴스가 TV 뉴스보다 인기를 끄는 등 말 그대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에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 환경은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여전히 어마어마하고 가계소득이나 물가 등 소비 관련 지표는 호전될 거 같지 않아요. 내년에도 일반 국민의 소비 심리가 위축될 것 같아 걱정스럽네요.”

책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용어이자 ‘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인 ‘워라밸’에 대한 내용도 비중 있게 실려 있다. 그는 1988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 조직보다는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워라밸 세대’라고 명명했다. 김 교수는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삶을 더 소중히 여기는 새로운 ‘직딩’이 출현하고 있다”며 “조직 문화의 발전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무장한 신세대 직장인, 바로 ‘워라밸 세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담회에서는 10년간 ‘트렌드 코리아’를 펴낸 것에 대한 소회도 들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이 일을 10년 동안 했다는 걸 대견하게 생각해주셨으면 한다”며 웃었다.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펴내며 내놓은 전망 가운데 가장 놀라웠던 건 ‘욜로(YOLO)’ 트렌드였어요. 한 번 뿐인 인생 제대로 즐기자는 식의 트렌드를 반영할 단어는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용어였죠. ‘트렌드 코리아 2017’에 실은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책을 내고 3∼4개월 지나자 거의 모든 언론에서 욜로 현상을 조명하더군요.”

‘트렌드 코리아 2018’은 “오늘날의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학자 유발 하라리가 저서 ‘사피엔스’에 쓴 문장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이맘때 대한민국이 올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은 매년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대중이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