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정권, 박근혜 풍자 연극 ‘개구리’ 결말도 바꿨다

입력 2017-10-30 18:58
뉴시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브리핑

문체부, 국립극단 단장 통해 조치


지난 정부가 사전검열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풍자한 국립극단 연극 ‘개구리(사진)’의 결말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30일 서울 광화문 KT빌딩 진상조사위에서 기자브리핑을 갖고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박근혜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지원 배제 등과 같은 소극적 조치뿐만 아니라 내용 수정 등 적극적 개입을 한 정황이 처음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해당 사례는 진상조사위가 공개한 ‘국립극단 기획공연 개구리 관련 현안 보고’ 문건에서 드러났다. 2013년 9월 처음 공연된 ‘개구리’(연출 박근형)는 주인공이 부조리한 현실을 구원할 ‘그분’을 찾기 위해 천상으로 떠나지만 ‘그분’은 본인 대신 주인공의 어머니를 세상에 보낸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당초 극본 초안은 이와 달랐다.

진상조사위가 공개한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 문건에 따르면 본래 결말은 주인공이 ‘그분’을 세상에 모시고 오는 것이었다. 문체부는 극중 ‘그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고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 ‘기말고사 커닝’으로 풍자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문체부가 당시 손진책 국립극단 단장을 통해 연극에 취한 조치를 설명했다. 손 단장은 박근형 연출가에게 ‘그분’이 아니라 어머니가 오는 것으로 결말을 수정하도록 하고 정치적 풍자를 대폭 완화하도록 했다. 박 연출가는 문체부 지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내용 수정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최근 진상조사위를 통해 경위를 알게 됐다고 한다. ‘개구리’는 ‘수첩공주’라는 표현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을 풍자해 공연 당시에도 세간에 큰 화제가 됐다.

이밖에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해외교류사업에서 문체부의 지시로 소위 ‘블랙리스트’ 작가가 배제된 정황도 공개됐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출신인 이시영 시인은 미국 하와이대가 초청한 작가 명단에 포함됐으나 문체부가 이를 불허했다. 유명 소설가 김연수와 김애란은 미국 듀크대 행사에 초청 받고도 한국문학번역원의 비협조로 가지 못했다. 지난해 시인 신경림 정끝별, 소설가 박범신의 중국 항저우 한국문학행사 참가도 문체부가 불허했다.

이와 함께 블랙리스트 실행과정에서 박명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과 박계배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이 적극 관여한 정황도 확인됐다. 진상조사위가 공개한 문건을 보면 박명진 전 위원장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을 만나 현장 예술계의 동향을 보고하고 예술인들 지원 관련 방안에 대해 협의한 내용이 담겨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블랙리스트가 어디까지 작동하고 어느 범위까지 실행됐는지 조사할 부분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