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오종석]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삼성’

입력 2017-10-30 17:26

세계 최대 부호이자 마이크로소프트(MS)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지난 6월 또 46억8000만 달러(약 5조3000억원)에 달하는 MS 주식 6400만주를 기부했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MS 주식의 약 38%에 해당된다. 그는 2015년 6월 이후 매 분기 정기적으로 800만주씩 기부해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게이츠가 그동안 기부한 MS 주식은 7억주(약 5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게이츠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기부문화를 이끄는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그는 지난 6월 27일 미국 PBS 방송에 출연해 불편한 진실을 고백했다. “미국의 번영은 극소수 부자 사람들에게만 믿을 수 없는 부를 안겼다. 미국 경제의 진짜 문제는 나 같은 1% 부자들이다.” 부자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그는 2006년 6월 재산의 85%를 5개 자선단체에 매년 나눠 기부하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자신의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는 2015년 첫째 딸 출산 당시 아내 프리실라 챈과 함께 보유하고 있는 페이스북 주식 99% 기부 계획을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최근 한국에 온 지인은 “미국인들은 진심으로 게이츠와 워런 버핏, 저커버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이 부자가 되면 국민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3분기 확정치 실적이 31일 공개된다. 이미 발표된 잠정치 실적에서 영업이익은 14조원을 훌쩍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가적으로 경사다. 박수갈채를 보내고 샴페인이라도 터뜨려야 할 판이다. 그런데 국민은 그렇게 기뻐하지 않고 시큰둥하다. 왜 환호하지 않을까. ‘우리 삼성’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서다. ‘그들만의 삼성, 그들만의 잔치’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은 삼성이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삼성 일가족만 더 큰 부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만 더 크게 느낀다. 실제로 재벌닷컴이 상장사의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가치를 지난 20일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올 들어 삼성 일가족이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보유 주식 가치는 연초보다 5조2899억원(37.1%) 증가한 19조5559억원으로 2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호흡곤란과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진 이후 줄곧 병실에 입원해 있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 아들 이재용 부회장 보유 주식 가치도 8조4870억원으로 1조8274억원(27.4%) 증가했다.

대한민국 최대 기업인 삼성 실적이 향상되면 나라 경제 전체에 분명히 도움이 되니 기쁜 일이다. 거꾸로 삼성이 휘청거리면 나라가 흔들릴 수도 있다. 삼성 승계와 특혜논란의 핵심으로 지목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 당시 국민 여론이 대체로 긍정적이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인 다수 국민은 애국심으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반대에 맞서 삼성 합병을 지지했다. 삼성은 지금까지 국가나 사회에 어느 기업 못지않게 많이 기여했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갑부들의 기부행렬 등 부의 사회환원에 비춰보면 아직 한참 멀었다. 굳이 과거의 정경유착,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삼성의 관계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이재용 구속은 상징적 사건”이라며 “그래도 삼성과 한국경제가 잘 굴러간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이어 “삼성 일가도 이제 회사를 자기들 것으로만 여겨선 안 된다”며 “국민과 함께 가지 않으면 자칫 배당받는 대주주로만 남을 수도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삼성, 특히 삼성 일가족은 이제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할 때다. 국민들이 이건희 이재용 부자를 존경하고 ‘우리 삼성’이라고 느끼며 아낌없이 박수를 보낼 수 있도록.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