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반역죄’ 대신 ‘카탈루냐 조기선거’ 유화책 선회

입력 2017-10-30 05:01
스페인 카탈루냐의 주도 바르셀로나에서 주민들이 27일(현지시간) 자치의회가 독립국가 선포안을 가결하자 의회 밖에서 독립을 상징하는 에스텔라다 깃발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독립 선언 직후 스페인 중앙정부는 헌법 155조에 따라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AP뉴시스
카를레스 푸지데몬 수반. AP뉴시스
카탈루냐 자치정부·의회 전격 해산… 직접 통치 개시

부총리를 책임자로 임명
12월 21일 조기선거 결정


스페인의 카탈루냐 자치정부 분리독립 사태가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 국면에 처했다. 중앙정부와 자치정부 간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카탈루냐 정세에 불안을 느낀 일부 시민은 은행에서 돈을 찾기 위해 길게 줄을 섰고, 다수 기업들이 카탈루냐에서 다른 지역으로 본부를 옮겼거나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앙정부는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지난 27일(현지시간) 독립을 선언하자 상원에서 승인된 헌법 제155조에 따라 카탈루냐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중앙정부는 카를레스 푸지데몬 수반을 비롯한 자치정부 각료들을 전부 해임한 뒤 스페인 부총리를 직접 통치 책임자로 임명했다. 또 새 자치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조기 선거를 12월 21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푸지데몬 수반은 28일 TV 연설에서 분리독립 지지자들에게 ‘민주적 저항’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룬 것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길은 헌법 155조 적용에 민주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민주적 저항’이 중앙정부의 조치에 불복종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영국 카디프 대학 앤드루 도울링 교수는 AP통신에 “푸지데몬 수반의 성명은 모호하고 부정확할 뿐 아니라 새로운 나라의 대표라는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 도이체벨레(DW)방송은 “카탈루냐 독립공화국은 가상현실”이라고 비꼬았다.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주민 사이의 충돌이 우려되는 가운데 중앙정부가 초강경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12월 선거에 푸지데몬 수반의 출마를 독려하고 나섰다. 이니고 멘데스 데비고 중앙정부 대변인은 “푸지데몬 수반이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정치적 활동을 지속할 권리는 있다”면서 “이번 선거에 참여한다면 ‘민주적 저항’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중앙정부는 자치정부 지도부를 반역죄로 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은 자치정부 공무원 상당수가 중앙정부의 명령에 불복종하겠다고 밝히는 등 자치정부 장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독립 지지자들의 시위를 막는 과정에서 자칫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면 사태가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카탈루냐 주민의 절반 이상이 자치의회 해산 및 12월 선거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의 28일 설문조사 결과 찬성 의견이 52%로 반대 43%보다 많았다. 응답자의 55%는 독립선언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찬성한다는 응답은 41%였다. 29일엔 카탈루냐 주도 바르셀로나에서 30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 반대 집회가 열렸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스페인 5개 대형은행 중 2곳이 카탈루냐를 떠나겠다고 발표했고, 3주 전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 이래 1700개 회사가 카탈루냐 밖으로 본부를 옮겼다고 전했다. 또 현금 인출 사태 등으로 지난 27일 주요 은행의 주가가 5∼6% 급락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