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직장 내 논란이 급속 확산
단순 장난 넘어 심각한 수준
처벌 어렵고 훈계가 대부분
교사들 규정없어 우왕좌왕
지난달 서울 A초등학교 5학년 교실, 수업 중 단톡방(단체채팅방)에서 몰래 대화를 나누던 남학생 대여섯이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을 힐끔 훔쳐보고는 키득거렸다. 교사는 이들을 따끔하게 혼낼 요량으로 휴대전화를 빼앗았지만 곧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들의 단톡방에서는 “쟤 다리 벌리면 섹시할 것 같지 않냐” “따먹고 싶다”는 등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장난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수위였지만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에 따라 교사는 학생에 대한 성범죄 사실을 알게 되면 곧바로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 신고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29일 “성폭력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가나 직장 내 메신저 대화방 성희롱 논란이 초등학교 교실에까지 번지고 있다. 단톡방 성희롱에 대한 법적 해석이 분분하고, 처벌 수위나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늦어지면서 초등 교육 현장 곳곳에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내 초등학교 학폭위에서 심의한 성폭력 95건 중 10건이 SNS상에서 발생했다. 특히 단톡방 성희롱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는 단톡방 성희롱이 10건 중 3건꼴”이라고 설명했다.
일선에서는 A초등학교처럼 학폭위를 열지 않는 학교들의 사례까지 고려하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성희롱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초등학교에서 30여년간 근무한 한 교사는 “당사자에게 직접 한 말도 아닐 뿐더러 ‘초등학생이 뭘 알고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성희롱 예방 교육 정도로 끝내곤 한다”며 “교사들도 처벌과 훈계를 어느 수위로 해야 할지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최근 수년간 서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을 성적으로 비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지만 미온적 대처가 이어지면서 초등학교까지 번진 셈이다. 대학들의 경우 피해 여학생들이 강하게 반발해 학교가 징계에 나섰지만 대부분 근신, 유기정학 등 솜방망이 처분에 그쳤다. 단톡방 성희롱에 대한 법적 제재도 여전히 취약하다. 성폭력범죄처벌특별법에는 성희롱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 자체가 없다.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려면 외부로의 전파 가능성이 인정돼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위은진 여성인권위원장은 “학교나 회사에서 (성희롱을) 더 적극적으로 징계해야 하지만 단톡방 대화가 사적 영역이라고 생각해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성 감수성은 신체 특성과 상관없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라며 “단톡방 성희롱 문제가 불거진 지 수년이 지났지만 이런 감수성이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에 초등학생들까지 보고 들은 걸 따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생각해봅시다] 초등생도 ‘단톡방 성희롱’… 조기 성교육 부실
입력 2017-10-3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