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하림과 농가 중간에 ‘썸벧’이 끼어 약품 구매대행

입력 2017-10-29 18:37 수정 2017-10-29 22:17



대량의 약품 재고 관리 등
실질적 행위 없이 단순히
거래처에 주문만 하고
약값의 10% 마진 챙겨


하림그룹의 지배구조상 최정점에 있는 올품이 그룹 소속 양계농장의 동물약품 구매대행을 시작한 것은 2012년 3월부터다. 그동안 각 농장 또는 하림 본사가 수행해 왔던 약품구매 업무를 올품에 모두 넘겼고, 올해 5월까지 올품의 100% 자회사였던 한국썸벧이 이 업무를 맡았다. ‘농장→하림본사→올품→동물약품 도·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절차가 생겨났고, 올품은 한국썸벧을 통해 중간에서 ‘통합구매’ 명목으로 마진을 챙겼다.

업계에선 하림의 거래 절차를 ‘이상하다’고 말한다. 국내 최대 닭고기 유통업체인 하림은 동물약품 도·소매상이나 동물약국 입장에서는 중요한 고객이다. 굳이 계열사를 통하지 않아도 하림과 소속 농장들이 거래상 우위를 점할 수 있고 싼 값에 약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때문에 한국썸벧이 구매를 대행하면서 하림과 농장은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썸벧은 그간 동물약품 구매대행을 하면서 통상 약품가의 10% 안팎의 수수료를 마진으로 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 A씨는 29일 “하림과 농장의 입장에서는 안 내도 될 수수료를 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런 문제 때문에 통상 농장이나 본사는 직접 동물약품을 구매한다. 양계업체 관계자 B씨는 “과거 하림처럼 계열사를 중간에 끼고 동물 약품을 구매해 본 적도 있었지만 비용상승 문제 때문에 농장 반발에 직면했었다”며 “이후 농장이 각자 수의사 처방을 받아 약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또 농장마다 상황에 따라 필요로 하는 약도 제각각이다. 중간에서 계열사가 공급할 약품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 역시 농장의 불만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림이 한국썸벧을 지원하는 사실 자체가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 C씨는 “하림과 올품은 한 그룹에 속한 회사이지만 비슷한 업종을 영위하는 경쟁사 관계이기도 하다”며 “하림이 올품의 자회사였던 한국썸벧에 구매대행을 맡기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건 어색해 보인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하림의 지배구조상 특성을 주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부터 동물약품 구매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썸벧은 올해 5월까지 하림그룹 김홍국(60) 회장의 아들인 준영(25)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올품의 자회사였다. 특히 ‘올품→한국인베스트먼트(옛 한국썸벧 투자부문)→제일홀딩스→하림’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상 올품은 그룹의 최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사실상 하림과 계열사들의 약품구매를 올품이 대행하도록 하면서 그룹 승계자인 준영씨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구조가 생긴 셈이다. 지난 5월부터 한국썸벧 사업부가 분리됐지만 구조는 마찬가지다. 하림그룹 계열사인 제일사료가 한국썸벧 사업부를 인수했는데, 올품은 제일사료의 지분 11.89%를 소유하고 있다. 결국 동물약품 구매대행을 통한 이익의 일부는 여전히 올품을 향한다.

공정위는 한국썸벧의 구매대행 행위로 하림 측에 어떤 경제적 효율이 발생했는지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한국썸벧의 역할이 대량의 동물약품 재고운영 등 실질적 행위 없이 단순히 특정 약품을 거래처에 대신 주문하는 데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미 공정위는 비슷한 사례를 제재한 바 있다. 2012년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서비스 업체인 롯데피에스넷은 ATM 기기를 계열회사인 롯데알미늄을 통해 간접구매했다가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 롯데그룹은 재무 상황이 어려웠던 롯데알미늄을 단순히 거래 중간에 끼워 넣어 부당이득을 취하도록 했다. 롯데알미늄은 중간에서 아무런 실질적 역할도 수행하지 않았다. 지난해 현대그룹 역시 현대증권과 제록스 간 거래에서 총수 친족 회사인 HST를 끼워 넣었다가 공정위 제재를 받았다.

하림은 이런 지적을 ‘통합구매행위’라는 말로 반박하고 있다. 우선 그룹의 독특한 동물약품 거래 구조는 비용절감을 위한 것이란 설명이다. 또 2012년 동물약품 관련법이 강화되면서 중요한 경영 리스크가 된 ‘동물약품 관리’를 한국썸벧이 관리하게 되면서 각 농장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림 관계자는 “한국썸벧이 그룹에 필요한 동물약품을 통합구매하면서 시중보다 염가에 약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한국썸벧이 일정 마진을 취한다 해도 농장이 부담하는 비용은 시중보다 싸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