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중 정상회담 서두르지 말아야

입력 2017-10-29 17:45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로 악화됐던 한·중 관계에 해빙조짐이 보이면서 기업들의 마음이 급하다. 다음 달 11일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 ‘광군제’ 특수를 겨냥한 국내 일부 유통업체의 마케팅이 벌써 시작됐다. 중국 허베이성의 한 여행사가 한국행 단체상품 판매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관광업계도 들뜬 분위기다. 지난주부터 화장품 관련 주가가 치솟는 등 곳곳에서 기대감이 터져 나오고 있다.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로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2기에 돌입한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키로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다양한 채널의 접촉이 눈에 띄었고 통화스와프 재연장 계약, 국방장관 회담 등 변화의 전기가 될 굵직한 사건도 있었다. 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의 비상식적인 경제보복 조치에 13조원이 넘는 피해를 본 우리로서는 얼음 녹는 소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피해가 집중된 관광·유통업체가 조만간 예상되는 중국 특수를 위해 서두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과 다르다.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한다. 시간에 쫓겨 중국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다음 달 10일 베트남에서 시작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에 한·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사드 문제를 포괄적으로 매듭짓겠다는 구상은 시기적으로는 좋을지 몰라도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정상회담이라는 성과에 매달리지 말고 치밀하게 협상을 벌여야 한다.

사드 한반도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양국이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다. 중국은 우리가 느끼는 생존의 위협은 무시하고 자국의 전략적 이익이 훼손됐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 일방적인 경제보복을 가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쩔 것이냐는 식의 오만한 태도에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많은 국민이 실망했다. 단순히 정부 사이의 관계가 악화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국민감정까지 상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하지 않은 채 관계개선에만 치중한다면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반도는 지금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상황이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위협이 제거되지 않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중국과의 어설픈 봉합은 갈등의 불씨가 될 뿐이다.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서로에게 없어서 안 될 수준까지 발전했다. 인적·문화적 교류 역시 다른 어떤 나라보다 활발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분단된 한반도라는 냉혹한 지정학적 현실도 공유하고 있다. 사드 갈등 극복은 이 모두를 아우르며 서로를 존중하는, 새로운 한·중 관계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