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2심서 유죄… 이유는?

입력 2017-10-28 05:00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유하(60·사진) 세종대 교수가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2심 법원은 “허위 사실을 적시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를 저하시켰다”며 1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었다. 다만 “과도한 처벌로 학문·표현의 자유가 위축돼선 안 된다”며 비교적 가벼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박 교수는 이번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김문석)는 27일 박 교수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일본군에 강제 동원돼 성노예 생활을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크나큰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성적 학대를 당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자발적 성매매’ 등의 표현을 써 이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도 했다.

1심은 책에 기술된 위안부 관련 표현 35개 중 30개는 ‘박 교수의 개인적 의견’이라고 봤다. 나머지 5개 표현도 “사실을 적시하긴 했지만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위안부를 유괴하고 강제 연행한 것은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등의 표현이 피해자들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발적 매춘부’ 등 위안부의 본질이 매춘이었다고 기술한 부분은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으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죄를 물을 수 없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을 차례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먼저 35개 표현 중 11개에 대해 “사실을 적시했다”고 봤다. 이어 ‘일본 옷을 입고 일본 이름을 가진 일본인으로서 일본군에 협력했다’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에 있던 여성들’ 등의 표현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회적 평가를 깎아내렸다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위안부가 노예적이긴 했어도 일본 군인과 동지적 관계를 맺었다’는 부분에 대해선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허위사실이라 판단한 근거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문(1993), 유엔 경제사회위원회 인권보고서(1996) 등 국제기구 보고서를 들었다.

재판부는 “해당 저서는 위안부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섰고 일본군에 협력했다고 독자들이 받아들이게끔 서술됐다”며 “이는 객관적 사실과 다른 허위사실이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벌금형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하며 “잘못된 의견이나 생각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토론과 논의를 통해 걸러져야 한다”며 “과도한 법적 처벌로 학문이나 표현의 자유가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강하게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부당한 판결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반드시 상고하겠다”고 말했다.

글=이가현 양민철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