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혁명은 현재도 진행 중
정치적 변화 지켜보며 안도감
적폐 청산해야 용서·화합 가능
직접 민주주의 요구 많아져
소환제도 등 보완장치 숙제
촛불집회 타성화 등 한계도
지난해 10월 29일 시작된 촛불집회가 1주년을 맞는다. 촛불은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새로운 형태의 ‘참여형 시민’이 등장했음을 알리며 지난 1년간 우리 정치·사회 전반에 변화를 가져왔다. 국민일보는 27일 정치·사회·헌법학자 8명에게 ‘촛불 1년’의 성과와 과제를 자문했다.
학자들은 수동적 ‘국민’에서 적극적 ‘시민’으로의 의식전환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다만 정치 체제가 이를 수용하지 못해 여전히 ‘진행형 혁명’이라고 진단했다.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촛불 이후 지속된 사회 갈등 봉합 등은 숙제로 지목됐다.
시민의식 성장의 계기
총 23차례 열린 촛불집회에는 단일 사안으로는 헌정 사상 최대인 연인원 1600만명이 참여했다. 부패한 정부를 그대로 두고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촛불집회를 통해 ‘모든 사람이 정치의 주체’라는 시민의식이 성장했고, 자기 목소리를 분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시민들에게 생겼다”며 “이 같은 성과는 현재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교수는 “이제는 광장에서만 촛불을 밝힐 게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정권을 감시하며 촛불을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시민들에겐 ‘정부를 신뢰해도 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이후 일련의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내며 변화한 정치로부터 위로를 받았다”며 “이젠 제도 정치권에 대한 일종의 안도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의 참여를 통해 개혁을 이끌어냈지만 아직 제도권 정치의 변화까지는 완성하지 못했다”며 “제도적 변화의 키를 기성 정치권이 쥐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민과 정치권 사이의 불협화음, 갈등, 불신 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촛불의 타성화’는 경계해야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촛불집회 당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고 직접민주주의의 모범적 사례가 됐는데, 그 자체가 타성화되는 것은 곤란하다”며 “촛불집회 주최자의 입장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 태극기집회 등 맞불 시위도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적폐청산을 정부에 맡겨둬야지 또 다른 집회나 시위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목진휴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도 직접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압도하는 현상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목 교수는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촛불집회가 지나치게 영향을 끼치는 양상도 있다”며 “촛불집회는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재가 돼야 하는데 대체재가 돼버린 측면이 있다”고 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넓은데 이들을 모두 충족시킬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니 이미지 정치 쪽으로 흐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처벌 뒤에 용서·화합도 가능
향후 과제로는 적폐청산의 과업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이 주를 이뤘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선 포괄적 차원에서 과거의 적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흑인 차별이라는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언급하며 “당시 1만명 이상이 사면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진 건 3000명뿐”이라며 “처벌 뒤에 용서와 화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상희 교수도 “적폐청산의 의제들을 점점 더 넓혀가면서 그동안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괴롭혀왔던 사회 전반의 부조리 현상이 남아있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촛불집회 이후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어 헌법 개정 논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국민이 중요 국가 의제들에 대해 수시로 투표하고, 국민들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제도를 명문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적폐청산 뒤에는 우리 사회가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소하는 등 국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고민하며 그에 맞는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라고 설명했다.
윤성민 이택현 이형민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촛불집회 1주년] “수동적 국민에서 적극적 시민으로”
입력 2017-10-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