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일단 야당의 헌재소장 지명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국회에 헌재소장 임기 논란 해소를 압박하기 위한 뜻으로도 해석된다.
청와대는 이 후보자 지명이 야권의 헌재소장 우선 지명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7일 “국회에서 헌재소장 임기 문제를 해소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야권도 헌재소장을 먼저 지명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며 “국회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헌재소장 미지명 시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 절차를 거부하겠다고 밝히는 등 야권은 헌재소장 임명과 재판관 인사청문을 연계시키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문 대통령도 청와대 정무라인을 통해 이런 내용을 보고받고 고심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김이수 전 헌재소장 후보자 낙마 이후 누구를 지명하더라도 국회통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하지만 야권 요구에 따른 결단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크다. 헌재소장이 1년도 안 돼 퇴임할 경우 헌재 업무의 연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불과 몇 개월 만에 헌재소장도 다시 인선해야 한다. 이 후보자 지명이 무책임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 절차 중 국회에서 헌재소장 임기 문제가 해결되는 시나리오도 있다. 김이수 전 헌재소장 후보자의 경우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때까지 넉 달이나 소요됐다. 때문에 이 후보자 임명동의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이 후보자도 새로운 임기를 시작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 후보자를 재판관과 동시에 헌재소장으로 지명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을 지명할 수밖에 없다는 시그널”이라며 “그럼에도 국회는 헌재소장 임기 문제 해소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헌재소장 임기를 개헌 논의에 포함시킬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헌재소장 임기는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에 동시에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헌재법만 개정해서는 불명확한 헌재소장 임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개헌안에 헌재소장 임기 규정을 포함시킨다면 이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이뤄질 경우 이 후보자는 개헌 전 마지막 헌재소장을 지내는 셈이 된다.
한국당은 일단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태옥 원내대변인은 “비교적 온건한 성향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인사청문회를 지켜봐야겠다. 극단적인 편향성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2012년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은 이 재판관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3명씩 추천하는 원칙이 무너졌다. 남은 임기도 지나치게 짧다”고 지적했다. 전지명 바른정당 대변인은 “후보자 지명 소식을 전하기 전에 일련의 사태에 대한 사과부터 하는 게 옳다”고 했다.
강준구 김판 기자 eyes@kmib.co.kr
헌재소장 이진성 재판관 지명, ‘野요구’ 수용 모양새… 임기 논란 법적 해소 압박
입력 2017-10-27 18:18 수정 2017-10-27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