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원세훈 시절부터 검찰 수사 방해했다

입력 2017-10-27 18:23 수정 2017-10-27 23:43
2013년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진홍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왼쪽)과 이명박정부 국정원의 각종 정치공작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이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요원 댓글활동 꼬리 밟히자
원세훈, 수시로 회의 주관

남재준 원장, 2013년 4월
장호중 등 검사 3명 영입
‘현안TF’ 가동 조직적 공작

檢 적폐수사 동력 확보 위해
내부 비리부터 단죄 나서


검찰이 2012년 대선 직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 원장 재직 때부터 국정원 측이 불법 정치·대선개입 수사 진행을 막으려 한 사실을 확인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취임한 후 수사 방해공작은 더욱 조직적, 계획적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 장호중 부산지검장 등 국정원에 파견됐던 검사들도 동원됐다는 게 지금까지의 수사 내용이다.

원 전 원장은 18대 대선을 8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요원 김하영씨의 댓글활동이 꼬리가 밟혀 민주당 의원들과 이른바 ‘오피스텔 대치’를 하게 되자 곧바로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원 전 원장은 수시로 회의를 열어 수사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이 대책회의 결과에 따라 국정원이 당시 진행 중이던 경찰의 댓글사건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본다. 서울경찰청은 대선 사흘 전인 12월 16일 심야에 김씨 컴퓨터에서 특정 정치인 지지·비방 댓글을 단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국정원도 이에 호응해 “국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대선 막판 돌발변수로 작용한 당일의 발표 이면에 국정원의 기획과 수사 간섭이 있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국정원과 경찰 간 창구로 지목된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은 27일 구속 수감됐다.

국정원은 원 전 원장이 2013년 3월 21일 물러날 때까지 여러 개의 태스크포스(TF) 형식 대응팀을 운영하며 검찰 수사 저지 방안을 모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고발이 잇따를 때였다.

검찰이 27일 압수수색을 한 장 지검장,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 등 7명은 모두 국정원 ‘현안 TF’ 소속이었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 조사에서 문제의 TF가 남 전 원장 취임 직후 공식화 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남 전 원장은 원 전 원장 퇴임 하루 뒤인 3월 22일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에 올랐다. 취임사에서 “나는 전사(戰士)가 될 각오가 돼 있다”며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그는 4월 초 국정원 개혁을 명분으로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있던 장 지검장을 국정원 ‘빅5’ 요직인 감찰실장으로 영입했다. 같은 달 검찰 정기인사에서 변창훈 현 서울고검 검사와 이제영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이 국정원으로 파견됐다. 경찰 출신인 서 전 차장이 임명됐고,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진홍씨도 심리전단장으로 발령 났다.

남 전 원장은 서 전 차장에게 현안 TF 팀장을 맡기고, 자신이 직접 여러 차례 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댓글 수사팀이 형사소송법에 따라 국정원 압수수색 사실을 미리 통보하자 현안 TF는 긴급히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심리전단실로 위장한 ‘모델하우스 사무실’이 차려지고, 조작된 서류들이 비치됐다. 4월 30일 압수수색을 나간 검찰은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이 사무실이 맞느냐. 다른 사무실도 보자”며 승강이를 벌이기도 했으나 국정원 측이 완강히 거부했다.

이후 수사·재판에 출석하는 직원들의 진술 내용을 사전 각본대로 연습시키고, 사후 감독하는 일도 현안 TF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견검사들도 이 모의에 참여하고 법률 자문을 하는 등 범행에 깊숙이 가담했다는 게 수사팀 판단이다.

검찰은 이날 오후 이 부장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28일 서 전 차장, 29일 장 지검장 소환조사가 예정돼 있다.

검찰이 장 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간부 3명을 전격 압수수색한 건 사안의 엄중함, 향후 적폐청산 수사의 정당성 및 동력 확보 등을 감안할 때 내부 비리부터 엄정하게 단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013년 국정원 압수수색 현장 지휘를 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국가 정보기관이 수사기관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고, 이에 검사들도 연루된 정황이 나오자 분노와 허탈감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법무부 등과의 마찰 끝에 원 전 원장 등 3명을 불구속 기소할 수 있었지만 그때 확보한 자료는 극히 일부인 데다 각색마저 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윤 지검장은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관련 보고를 하고, 엄정 대처하라는 주문과 함께 수사 재가를 받았다고 한다.

지호일 황인호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