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식탁, 비싼 대가] 설탕의 달콤함에 섞인 인도 아이들의 눈물

입력 2017-10-27 05:06 수정 2017-10-29 21:08
지난 19일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비드 지역 사탕수수밭에서 데저스 신디군이 낫을 들고 사탕수수 밑동을 자르고 있다. 데저스는 본격적인 사탕수수 수확을 위해 25일 부모와 함께 서부 사탕수수밭으로 떠났다.
이번 수확철에도 사탕수수밭에 일하러 가는 바바 말리씨와 자녀들이 지난 20일 오후 양철판으로 엉성하게 만든 집 앞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탕수수밭에 이주해온 아이들 모습. 뒤로 보이는 천막과 사탕수수 잎, 나무를 엮은 집에서 이들은 생활한다. SEDT 제공
아동권리를 위해 37년간 일한 사회경제발전단체(SEDT)의 수리아칸트 쿨카니 대표
사탕수수 수확 시작되면
책가방 대신 낫 들고
부모 따라 농장으로
집떠나 보통 6개월 일해
하루종일 고된 노동에도
받는 건 1000원 안팎


인도 마하라슈트라주(州)의 비드(Bid) 지역에 사는 무헌 마마사헤브 신디(30)씨는 25일(현지시간) 서부 지역인 푸네(Pune)까지 200㎞에 이르는 장거리 여정에 올랐다. 다음 달 본격 시작되는 사탕수수 수확에 맞춰 밭일을 하기 위해서다. 신디씨 부부의 우마차에는 천막, 식기류, 먹거리 등이 실렸다. 둘째 아들 데저스(8)군도 ‘일꾼’으로 동행했다.

신디씨는 8년째 서부로 가는 길에 오르고 있다. 사탕수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밭에서 보통 6개월씩 수확 일을 했다. 지난 수확철에는 두 달간 사탕수수를 잘랐다. 신디씨 부부가 오전 4시부터 12시간을 꼬박 일하면 1t 트럭 두 대를 가득 실을 만큼의 사탕수수가 쌓인다. 그러면 456루피(약 7900원) 정도를 번다.

데저스군 역시 부모와 함께 일을 한다. 잘린 사탕수수 잎을 모아 묶는 건 데저스 몫이다. 자기 키의 절반만한 낫을 들고 사탕수수 밑동을 자르기도 한다. 사탕수수밭을 갖고 있는 설탕회사는 아이들에게 하루 50∼60루피(약 860∼1040원)를 준다. 데저스군이 일했던 밭에선 10살 내외의 아이들이 일하는 게 드물지 않다.

인도 중산층 자녀는 6살 때 학교에 입학한다. 데저스군은 수확철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다. 가장 가까운 학교도 80㎞나 떨어져 있어 방법이 없다. 데저스군은 우마차에 책을 싣고 가져가지만 며칠 읽으면 더 이상 읽을 책이 없다.

신디씨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덕에 사탕수수밭의 다른 이주노동자에 비해 교육열이 높다. 지난해부터 첫째 아들 신데사가르(10)군은 기숙학교에 맡기고 사탕수수밭으로 일하러 왔다. 1년 단위로 내야 하는 기숙사비는 2만5000루피(약 43만원)다. 사탕수수밭에서 6개월 일하면 손에 쥐는 돈이 약 5만 루피다. 둘째 아들도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여력이 안 된다. 신디씨는 “데저스도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기숙사비용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한국인은 콜라, 과자, 빵, 주스 등을 통해 하루 평균 설탕 65g을 섭취한다. 여기에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데저스군의 땀도 섞여 있다. 한국인 대부분은 달콤한 맛 뒤에 숨겨진 인도 사탕수수밭 아이들의 씁쓸한 현실을 알지 못한다.

인도 정부 무능·부모의 선불금 굴레에 멍드는 동심

인도 최대 명절 디왈리(10월 19일)가 끝나면 신디씨처럼 마하라슈트라주 동부에 사는 40만 가족이 마치 철새처럼 서부 사탕수수밭으로 대(大) 이주를 시작한다. 마하라슈트라주 서부 푸네, 사타라, 상글리, 콜라푸르를 잇는 ‘사탕수수 벨트’는 인도 전체 사탕수수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산지다. 이곳에서 이주 노동자들은 가뭄이 드는 해를 제외하고는 보통 11월부터 다음해 4∼5월까지 수확을 한다.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사탕수수밭 생활환경은 열악하다. 20년째 서부 사탕수수밭으로 이동해 일한 위크람 가이쿠와드(40)씨 증언을 들어보면 이들의 생활은 마치 선사 시대 인류의 삶이 연상된다. 사탕수수밭에서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고 장작을 때서 음식을 조리해 먹는다. 물은 근처 저수지 등에서 떠다 먹는다. 잠은 천막을 치고 잔다. 사탕수수 수확철은 겨울부터 봄까진데, 인도의 겨울은 매섭진 않지만 야영을 하기 힘든 건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은 위험 그 자체다. 사탕수수 수확철에 서부로 이동하는 아이들은 전체 40만명 정도다. 가이쿠와드씨는 “아이들이 사탕수수밭에서 놀다가 뱀에게 물리기도 하고, 사탕수수를 실으러 온 화물차에 치여 숨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겨울이면 아이들의 면역력이 약해져 병에 걸리기 쉽지만 근처에 병원이 없어 치료가 어렵다. 마하라슈트라주 서부지역에서 조혼(早婚)이 일반화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자 아이들을 일찍 결혼시킬 경우 사탕수수밭에 데려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가이쿠와드씨의 두 딸은 16세, 14세인데 이미 다 결혼했다.

아이들은 사탕수수밭에서 책을 펴는 대신 낫을 든다. 가이쿠와드씨의 작은 아들 라훌(12)군은 사탕수수밭에서 부모가 자른 사탕수수 줄기에서 잎을 자르고 모은 뒤 묶어 옮기는 일을 한다. 인도 내에서도 법적으로 아동노동은 금지돼 있다. 도시 공장에서는 이미 아동노동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농업 분야에서 가족노동 형태의 아동노동은 여전하다. 국제노동기구(ILO) 조사에 따르면 인도 내 아동(5∼14세)노동의 60%는 농업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고, 그 규모는 600만명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교육의 필요성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사탕수수밭엔 학교가 없을 뿐 아니라, 있다고 해도 등하교하기에 너무 멀거나 선생님이 없는 ‘껍데기 학교’뿐이다. 4∼5월에 사탕수수 수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도 6개월간 공백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 비드 지역에서 초등학교 5∼8학년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스리니와스 바가디(49)씨는 “사탕수수 수확철이 되면 교실 아이들 70%가 서부로 떠난다”며 “이들이 떠났을 때도 제대로 수업을 할 수 없지만, 이들이 돌아와도 진도가 안 맞아 수업이 힘들다”고 했다.

“실제 가보니 학교 없어”

마하라슈트라주의 사람들은 이런 현실이 문제가 있다고 모두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열악한 사탕수수밭 아동노동은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일까.

마하라슈트라주의 아동노동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지적한다. 마하라슈트라주 지역 신문 ‘마라크왈라사티’의 아수 카레(38) 기자는 “과거에 마하라슈트라 주정부가 사탕수수밭 아동들의 교육을 위해 학교를 짓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학교만 지어두고 교사들 월급을 주지 않아서 교사들이 모두 도망간 일이 있었다”며 “얼마나 인도 정부가 무능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하라슈트라주에서 아동 권리를 위해 37년간 일한 사회경제발전단체(SEDT)의 수리아칸트 쿨카니(67) 대표는 “정부가 사탕수수밭에 학교를 짓는다고 발표한 이후 2012년 24개 설탕 회사와 그 주변 사탕수수밭을 직접 찾아 조사했다”며 “그러나 정부 발표와 달리 실제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중앙정부 또는 주 정부가 마하라슈트라주 아동노동 근절을 위해 예산을 책정해도 부패 탓에 중간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실제로 학교가 운영되는 경우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명 ‘콘트랙터’의 인력 모집 방식도 사탕수수밭 아동노동이 계속되는 이유다. 콘트랙터는 설탕 공장의 의뢰를 받아 사탕수수 노동자를 데려오는 일종의 모집책이다. 콘트랙터인 로히다스 셰셰라우 로히데(39)씨는 “매년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공급하고 노동자들이 도망가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해 사전에 계약금을 준다”고 했다.

콘트랙터들은 사탕수수 수확이 시작되기 전에 보통 5만∼10만루피(약 86만∼172만원)를 노동자에게 준다. 계약금이라곤 하지만 일종의 선불 임금이다. 노동자들이 이를 계속 갚아가는 구조다. 그런데 한 가족이 사탕수수밭에서 6개월 일해 버는 돈이 약 4만∼5만루피 정도다. 사실상 갚기 힘든 돈이다. 그러다보니 소작농처럼 매년 사탕수수밭에 끌려가다시피 가야 하는 처지다. 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선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사탕수수밭에서 매년 일하는 바바 말리(32)씨는 “고향에서 건설노동자로 일하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벌 수 있지만 빚 때문에 매년 가게 된다”고 말했다. 콘트랙터의 계약 방식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모두 알지만 마하라슈트라주의 설탕 공장 120∼130곳 중 3분의 2는 정치인 등 지역 유력가가 운영하는 탓에 해결이 쉽지 않다.

“기숙학교에 보낼 수 있다면…”

사탕수수밭에 가서 일하는 부모들도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교육을 빼고는 하층민의 삶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에겐 그럴 여력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기숙사가 있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탕수수밭 노동자 아닐 와그마레(36)씨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다. 그런데 사탕수수밭을 이동하면서 일하다보면 학교에 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된다. 고향 집에 두고 가면 학교에 갈 수 있지만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 집 근처에 정부에서 지은 기숙학교가 있으면 맡기고 싶지만 많지도 않고 비용 역시 너무 비싸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저렴한 기숙학교를 만들면 자녀들을 사탕수수밭에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사탕수수밭 곳곳에 학교를 짓는 일도 필요하다. SEDT의 쿨카니 대표는 “3년 전까지만 해도 세이브더칠드런 등 서구 시민단체들이 이곳에서 활동하며 아동 권리를 위해 일했다. 그런데 경제도시 뭄바이가 마하라슈트라주에 있어 잘산다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다 떠났다”고 했다. 이어 “여전히 학교가 부족하다. 학교를 짓기 위해선 선진국의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동 구호 단체 ‘차일드라인1098’의 책임자 싼디 베임수레(32)씨도 선진국의 관심을 호소했다. 그는 “서구 사회엔 인도 북부의 마이카 광산이나 벽돌 공장의 아동노동 사례가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여전히 사탕수수밭의 아동노동은 규모가 더 크다. 선진국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비드(인도)=글·사진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