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추진하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자치권 박탈이라는 역풍 위기에 처한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이 26일(현지시간) 예정됐던 향후 대응책 발표를 취소했다.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오후 1시30분(한국시간 오후 8시30분) 중앙정부의 자치권 박탈 선언에 대한 대응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발표 직전 스페인 현지 언론들은 푸지데몬 수반이 중앙정부의 직접 통치를 막기 위해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12월 20일 조기 선거를 치를 예정이라고 긴급 보도했다. 하지만 발표는 제 시간에 시작되지 않았고 1시간 연기됐다는 발표가 나온 지 얼마 안 돼 언론에 취소를 통보했다. 자치정부는 취소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전날까지만 해도 푸지데몬 수반이 카탈루냐가 대내외에 독립을 선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공권력 개입을 불러일으키는 너무 위험한 선택이라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기 선거는 중앙정부와의 충돌을 피하면서 ‘재신임’을 통해 독립 추진의 대의를 유지하려는 일종의 돌파구인 셈이다.
선거에서 푸지데몬 수반이 속한 카탈루냐유럽민주당 등 독립추진파가 승리하면 다시 한 번 카탈루냐인들의 신임을 얻게 된다. 패배할 경우에도 푸지데몬 수반은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다. 일부 언론은 스페인의 또 다른 자치 지역인 바스크 자치정부 수반이 중재자로 나서서 중앙정부와 카탈루냐 자치정부가 이런 타협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스페인 중앙정부는 자치권 박탈을 포함한 ‘헌법 155조’를 발동해 카탈루냐 자치정부를 해산하고 자치권을 박탈한 뒤 6개월 안에 조기 지방선거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의결안은 27일 스페인 상원에서 통과될 것이 유력했다. 상원은 26일 푸지데몬 수반에게 출석해 카탈루냐의 입장을 설명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푸지데몬 수반은 이날 직접 참석하는 대신 서한을 통해 “자치정부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스페인 헌법을 거스르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자치권 박탈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극단적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 등 현지 언론은 푸지데몬 수반이 전날 자치정부 각료회의와 카탈루냐 집권연합 의원들과 논의 끝에 12월 조기 선거 방침을 정했으나 발표 당일 자치의회 내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급진좌파 성향의 분리독립 정당인 민중연합후보당(CUP) 등이 거세게 반발하자 발표를 미룬 것 같다고 보도했다. 다만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조기 선거 실시 움직임에 대해 스페인 정부는 “선거 방침을 발표하더라도 정부의 직접 통치를 피할 수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자치정부의 명운이 걸린 조기 선거가 치러지더라도 카탈루냐 주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미지수다. 지난 1일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찬성 90%가 나왔지만 투표율은 43%에 불과했다. 절반이 넘는 유권자들이 의사표명을 거부하거나 반대한 셈이다. 중앙정부의 강경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긴 하지만 푸지데몬을 향한 여론도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퇴로 막힌 카탈루냐, 독립 추진파 ‘내분’
입력 2017-10-26 18:56 수정 2017-10-26 2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