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보안사 동원 ‘광주’ 지속적 탄압
이철희·박주민 의원 자료 공개
전두환 정권이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를 동원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열기를 차단하기 위해 유가족을 성향별로 구분해 분열 공작을 펼치고, 광주 망월동 5·18묘역의 성역화를 막기 위한 ‘이장 작전’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박주민 의원은 26일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보안사가 1980년대 작성한 문건을 각각 6건, 3건 공개했다.
1981년 5월 28일 작성된 ‘광주사태 1주년 대비 예방정보활동 결과’에 따르면 보안사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다. 보안사는 당시 위령제 등 각종 추도행사의 기획을 봉쇄하고, 잠재 불만 표출화 예방 등의 활동방향을 세웠다. 구체적으로는 전남대 내 특정 동아리 와해를 위해 학군단에 비용을 지원하며 첩보활동을 시켰고, 광주 지역 대학생 가운데 순화대상자를 지정해 격리 조치 및 경찰 감시를 실시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추모 예배 무산을 위한 종교인 68명의 ‘안보 견학’에 250만원의 예산을 사용했다. 또 ‘구속자 가족의 미국 공보원 농성 와해 과정에서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과 협조한다’고도 적혀 있다.
이후 진행된 유족 분열 계획은 더욱 치밀했다. 83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 사태 관련 현황’ 문건에서 보안사는 유족을 ‘극렬 측’과 ‘온건 측’으로 구분했다. 38명의 극렬 측 유족은 다시 A급(8명), B급(14명), C급(16명)으로 구분한 뒤 ‘집중 순화 대상’으로 명시했다. 온건 측 유족은 111명이었다.
보안사는 이 같은 분류를 토대로 각각의 집단에 별도의 와해·회유 작전을 펼쳤다. 보안사는 극렬 측 유족 1명당 1명의 요원을 붙인 ‘물빼기 작전’을 실시해 15명(12세대)의 유족을 회유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또 온건 측 유족에게는 군인 및 군 가족을 활용한 순화공작과 취업 알선, 자녀 학비 면제 등을 통한 회유공작을 실시했고, 실적은 매 분기 사령부에 보고했다. 보안사는 유족들에게 백미 84가마와 연탄 2만3600장(82년), 백미 138가마와 연탄 4만1400장(83년)을 지원한 내역도 적었다.
전두환 정권이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의 분산 배치를 시도한 정황도 공개됐다. 희생자 묘역이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81년 작성된 ‘광주 사태 관련자 현황’ 문건에는 ‘공원묘지의 지방 분산’이 대책의 하나로 적시됐다. 이후 83년 작성된 ‘광주 사태 관련 현황’ 문건에는 ‘82. 3. 5. 전남지사 각하 면담 시 공원묘지 이전 검토 지시’ ‘82. 9. 15. 내무장관과 도지사, 각하께 보고’라고 기재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역 이장을 직접 지시하고, 시행 과정 등을 챙겼다는 것이 박 의원의 주장이다.
묘지 이장의 세부계획으로 추정되는 ‘비둘기 시행계획’(1983년 작성) 문건은 사망자 연고별로 묘역을 구분해 타 시·군 연고 묘는 해당 시장과 군수의 책임하에 직접 순화하도록 한 시행방침을 담고 있다. 또 이전비와 위로금 등은 ‘전남지역개발협의회’라는 단체를 앞세워 유족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묘역 이장 작전’에는 전남지역개발협의회는 물론 전남도청과 광주시청, 505보안부대, 인근 시·군청, 검찰, 안기부, 경찰 등 각종 국가기관이 모두 동원됐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5·18 유족 극렬·온건 분류… 집요한 와해·회유공작 펼쳤다
입력 2017-10-26 18:46 수정 2017-10-26 2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