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비리 드러난 34명 중
감사 전후에 5명 퇴사하고
1명 계약 종료로 떠났을 뿐
나머지 28명은 버젓이 근무
감사원, 합격 취소할
분명한 근거 없어 속수무책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가 뒤늦게 세상에 드러나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합격자는 뒤바뀌었고, 합격한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감사원으로부터 부정채용 지적을 받은 공공기관들이 문제가 된 직원들의 합격을 취소한 경우는 없었다.
해당 기관들은 이들의 합격을 취소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토로한다. 문제가 된 한 기관의 감사실 관계자는 25일 “현재로서 채용된 이들의 합격을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기관 관계자도 “감사를 전후해 부담을 느껴 스스로 그만둔 경우는 있지만 퇴사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했다.
감사원도 현재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채용된 사람이 적극적으로 비리에 가담하지 않은 이상 채용된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사규정상 합격을 취소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역할 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점이 명백해야 하는 등 현실적인 조치는 어려운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부정채용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 이미 공공기관을 떠난 경우 징계 처분 등 책임을 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지역난방기술의 전직 사장은 정치자금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지인을 2014년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1년6개월 동안 지급된 급여는 9400여만원이었다. 감사원은 “결격 사유를 알면서도 채용을 지시해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지만, 전 사장은 이미 퇴직했고 지인도 계약이 종료된 뒤였다. 감사원은 소관 기관에 전 사장의 비위 내용을 인사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사혁신처에 통보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감사원이 지난달 감사 결과를 통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하고 인사자료 통보 조치를 한 전직 인사만 12명에 달했다.
2013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무기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드러난 부정 채용도 정작 이를 주도한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었다. 당시 인사 업무를 총괄한 A과장은 알고 지내던 중소기업청 과장으로부터 “딸이 합격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고 이를 상급자인 B본부장에게 전달했다. 자체 감사 결과 부정 채용 사실이 밝혀졌지만 A과장과 B본부장은 이미 공단을 떠난 뒤였다. 당시 합격한 직원은 지금도 근무 중이다. 공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는 모든 채용에 외부 평가위원을 40% 이상으로 의무화했다. 작년부터는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도입해 투명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채용 비리 문제는 단지 몇 사람에게 특혜를 주는데 그치지 않았다.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서류평가와 면접평가에서 점수를 조작해 실제로 합격권에 있던 이들이 탈락하는 일도 있었다. 일부 기관은 특정인 채용을 위해 전형별 기준을 인위적으로 수정하면서 수많은 지원자들을 ‘채용 비리의 들러리’로 삼기도 했다.
해당 기관들이 감사원의 징계 요구를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는 점도 문제다. 강원랜드는 광범위한 인사채용 비리가 드러났지만 ‘검찰 수사 결과를 본 뒤 징계 수위를 정하겠다’며 버티고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감사원에 ‘재심의’를 신청했다. 해당 기관들이 감사원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할 방법은 없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공공기관은 332곳(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포함)이지만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한 달간 실시한 감사 대상기관은 53곳에 불과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감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7월까지 채용 비리와 관련해 감사원이 해당 기관에 처분을 요구한 것은 모두 255건이다. 고발 3건, 징계 41건, 시정 6건, 주의 126건 등이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공공기관 채용비리] 부정채용 발각돼도… 합격취소는 한 건도 없었다
입력 2017-10-2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