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남’ 대법관, 다양성은?… “배경보다 다양한 생각 중요”

입력 2017-10-26 05:01

김명수 대법원장은 25일 1시간여 진행된 기자간담회 내내 선 채로 질문을 받았다. “취임 한 달을 맞아 국민께 제 뜻을 알리는 기회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의 요건으로 ‘법관의 내·외부로부터의 확고한 독립’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간 사법부는 재판에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한다는 외부로부터의 압력 의혹, 일선 법관들이 대법원 등 윗선 눈치를 살피게 된다는 내부로부터의 압력 의혹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수년간 판결이 미뤄지는 미제 사건들과 올해 초 일부 사실로 확인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등이 이러한 의혹을 키워 왔다. 김 대법원장은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을 항상 생각하며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장 스스로부터 독립적인 판단 주체가 될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원합의체 재판장 역할을 수행하던 전임 대법원장들이 매번 다수 의견에 동조하던 관행을 깨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경우 전원합의체에서 소수의견이 없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단 1건의 별개 의견을 제시했었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소수의견에 가담하지 못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원칙적으로는 전원합의체에서도 내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원합의체에서 나는 13분의 1에 불과하다”며 수평적 전원합의체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선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질의도 쏟아졌다. 최근 검찰이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등 수사 과정에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공개 비판한 것에 대해선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장재판도 엄연한 재판”이라며 “재판 결과는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 법치주의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영장재판은 판결문이 공개되는 일반 재판과 달리 결정 사유를 알기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자 김 대법원장은 “법관들도 고민하고 있다”며 “영장항고제, 보석조건부 영장발부제 등 제도보완 필요성이 한꺼번에 논의됐으면 한다”고 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재판부를 공개 비난하고 결국 이날 5명의 국선변호인이 선임된 사태와 관련해선 “재판이 원활히 진행돼 결론까지 잘 도출됐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말을 아꼈다.

사법부 내 최대 이슈인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추가 조사하는 문제에 대해선 주변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서울 지역 판사들을 6차례에 걸쳐 만났고 27일 대법관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키로 했다고 전했다.

대법관 다양화 문제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에 사회의 다양한 가치가 투영될 수 있도록 대법관 구성 다양화를 이뤄야 할 것”이라며 동의를 표하면서도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이라고도 하던데, 거기서 빠지면 다 다양성을 충족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남녀 성별과 출신대 등 배경만으로 다양성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는 “배경도 중요하지만, 어떤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형식’이 아닌 ‘실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그간 대법원의 공식적인 해명이었다. 경력과 지역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철학이 다양화돼야 진정한 다양화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대법원이 택한 방식은 누구나 대법관을 천거할 수 있게 하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위원 10명 중 7명을 외부 인사로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날 김 대법원장도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내년 1월 퇴임하는 김용덕 박보영 대법관의 후임 인선이 대법관의 실질적 다양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