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햇볕·지하수로 냉난방 끝내준다… 브뤼셀 ‘제로에너지빌딩’

입력 2017-10-27 05:00
벨기에 최대 제로에너지빌딩인 ‘브뤼셀환경’을 건물 뒤편에서 촬영한 사진(위). 촘촘한 유리창이 실내에서도 자연광을 충분히 받게 해준다. 건물 정면에는 천장까지 이어진 대형 유리창 왼편에 태양광 패널이 있고(가운데), 1층 내부에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델베키 EU 집행위 기후변화총국장
에너지 감축 효과 극대화 빌딩 ‘브뤼셀환경’
로비 전면과 천장 대부분을 유리로 설계
통유리 통해 태양열 받아들여 겨울에는 훈훈
여름엔 8개 지하수 펌프로 냉기 유지해 시원


유럽연합(EU)은 기후변화 정책에서 선구자(Leader)와 중재자(Mediator) 역할을 하는 ‘리디에이터(Leadiator)’를 자처하고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의 대명사 격인 ETS는 EU가 세계 최초로 도입해 발전시킨 제도다.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 비슷한 제도가 도입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U는 회원국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40% 줄인다는 목표를 부여했다. 2020년까지 하겠다던 20% 감축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그런 노력은 유럽인이 생활하는 ‘건물’을 바꿔놓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소비를 극소화하거나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제로에너지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EU는 2021년부터 새로 짓는 건물은 모두 제로에너지빌딩이 되도록 할 것을 회원국에 주문했다.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크게 높인 모범적인 도시로 꼽힌다.

브뤼셀 ‘제로에너지빌딩’ 가보니

브뤼셀의 제로에너지빌딩 계획 ‘바텍스(Batex) 프로젝트’는 10년째 시 당국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바텍스는 모범적인 건물이란 뜻을 가진 프랑스어의 약자다. 브뤼셀은 바텍스 기준에 부합하는 건물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 건물이 크든 작든, 공공건물이든 민간건물이든 상관없이 지원한다. EU는 “바텍스 프로젝트는 친환경 건축이란 인식을 퍼뜨리며 도시 전체를 변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벨기에에서 가장 큰 패시브 빌딩인 ‘브뤼셀환경’에 찾아간 건 이달 초였다. 이곳은 바텍스를 집행하는 브뤼셀시의 환경에너지관리국이 입주해 있다. 제로에너지빌딩은 에너지 감축 효과에 따라 ‘패시브’와 ‘액티브’로 나뉜다. 전자는 단열 효과를 극대화한 건물, 후자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해내는 건물을 뜻한다.

2013년 지은 이 건물은 세계적인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 ‘브리엄(BREEAM)’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을 받았다. 브뤼셀은 한국 초겨울처럼 쌀쌀했는데, 건물 안에 들어서자 훈훈한 온기가 가득했다. 로비 전면과 천장 대부분이 유리로 설계된 덕이었다. 통유리를 통해 태양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연광을 통한 난방은 한겨울에도 유용하다고 건물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럼 더운 여름은 어떨까. 건물 구석구석을 소개하던 이 관계자는 “8개의 지하수 펌프로 냉기를 유지해 시원하다”고 했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건물을 지표면에서 86m 아래에 있는 지하수를 끌어와 식힌다는 거였다. 그 정도 깊이의 땅속 온도는 사계절 내내 일정하게 유지된다. 여름에는 건물 내부 온도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땅속 냉기를, 겨울에는 반대로 높은 땅속 열기를 냉난방에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통유리로 하늘을 볼 수 있는 로비 천장은 조명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복도 지시등을 제외하면 로비에는 조명기구가 거의 없었다. 자연광을 충분히 끌어들이도록 건물을 설계하면 따로 등을 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건물의 ‘아름다움’도 평가 기준

브뤼셀은 2007년부터 현재까지 건물 243곳에 모두 3300만 유로(약 438억원)의 바텍스 보조금을 지급했다. 선정 기준은 4가지다. 에너지 효율, 환경에 미치는 영향, 미래 수익성, 도시와 건축의 통합성이다. 특히 마지막 기준은 도시를 얼마나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느냐를 따지는 미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제로에너지빌딩도 주변과 어우러져 도시의 아름다움에 일조해야 더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브뤼셀환경도 아름다움을 고려해 지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줬다. 외형은 검은색 큐브 형태로 현대적이다. 건물 밖에는 100㎾ 용량의 태양광 패널이 있다. 역시 검은색이다. 관계자의 설명이 없었다면 패널인줄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태양광 발전설비는 무늬를 넣은 외벽처럼 건물과 조화를 이뤘다. 이 패널로 건물 전체 전력 사용량의 10%가량을 충당한다.

외부가 세련된 인상을 주는 반면 건물 내부는 나무색을 입혀 편안함과 따뜻함을 강조했다. 회의실 휴게실 등에 있는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재활용품인데, 똑같은 디자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집의 거실과 같은 안락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 건물은 에너지 절감뿐 아니라 이용자의 쾌적성까지 고려해 공기순환 시스템에 공을 들였다. 건물 꼭대기에 가보니 커다란 공기순환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환풍구와 외양은 비슷했지만 순환통로 안에는 공기청정 필터가 가득 차 있었다. 탁해진 실내 공기를 내보내고 신선한 외부 공기를 유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상 7층, 지하 1층 규모의 브뤼셀환경에는 6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자전거 주차장이 1층 내부에 크게 자리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기술로 에너지 절감을 실천할 뿐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이 동참하게끔 배려했다. 100대가 넘는 자전거를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 한쪽에는 샤워실도 갖춰져 있었다. 지하주차장에는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와 가장 가까운 공간에 전기차 충전소가 배치됐다.

보조금의 25배 ‘자발적 투자’ 쇄도

지금까지 브뤼셀시 보조금을 받은 신축·재건축 제로에너지빌딩에 투자된 비용은 총 8억1500만 유로(약 1조818억원)로 집계됐다. 보조금(3300만 유로)의 25배에 달한다. 이 정도 비율이면 보조금은 그저 거들어줄 뿐이다. 민간 자본이 친환경 건축에 투자하는 것은 하나의 ‘도시 현상’이 됐다. 바텍스 보조금을 받은 건물은 일반 주택부터 크고 작은 상점, 기업 사옥, 공공기관 등 다양하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은 기후변화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주거·상업용 건물의 에너지소비량은 EU 전체 에너지소비량의 무려 40%를 차지한다.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벌써 초과 달성한 데에도 바텍스 같은 제도와 자발적 투자가 상당한 기여를 했다.

■ 델베키 EU 집행위 기후변화총국장
“보통사람들 친환경적 소비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앞당겨”


요스 델베키(사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기후변화총국장은 EU가 2020년까지 세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앞당겨 달성한 데에는 보통사람들의 친환경적 소비가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같이 정부 주도의 목표 수립과 실행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온실가스 저감 노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결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총국이 설립된 2010년 이후 줄곧 총국장을 맡고 있는 그는 EU의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ETS)를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의 기후변화총국 회의실에서 기자와 만난 델베키 총국장은 “EU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40% 줄이기로 했다. 이런 목표는 EU 전체, 각 나라, 기관, 시민 등 다양한 층위에 적용될 것”이라며 “각 지방정부는 자동차나 난방처럼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것을 대상으로 친환경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기차 구매자에게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거나 주택 단열 개선을 유도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면서 “구체적인 방법은 각 나라와 지역 사정에 따라 다양하다”고 말했다. 브뤼셀의 바텍스와 같은 건축 보조금도 그런 접근법 중 하나다.

델베키 총국장은 그동안 유럽의 기후변화 대응이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했다. 그는 “2009년 EU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2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미 23%를 감축해 초과 달성했다”며 “1990년과 2012년을 비교하면 EU의 국내총생산(GDP)은 44% 증가했지만 총배출량은 19% 줄어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배출이 성공적으로 분리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도 국제사회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재생에너지, 풍력, 태양광 발전 등 에너지 다양성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뤼셀=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