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2기 출범] ‘경제책사’ 왕양, ‘브레인’ 왕후닝… 中상무위원 5명 누구

입력 2017-10-26 05:02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
왕양 부총리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오러지 당 중앙조직부장
한정 상하이시 당서기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

‘시진핑 1인 체제’ 완성 큰 역할 예상


리잔수(栗戰書·67)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측근으로 명단 발표 전부터 정치국 상무위원 선임이 확실시됐다. 1950년 허베이성 핑산에서 혁명원로 자제로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 와중인 72년 허베이성 스자좡 상업국 판공실 간사로 공직을 시작했다. 하방 등으로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그는 주경야독으로 부족한 학업을 보충, 하얼빈공대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산시성 부서기와 헤이룽장성 부서기, 구이저우성 서기 등을 역임한 리잔수는 2012년에 중앙판공청 주임(청와대 비서실장에 해당)으로 발탁됐다. 1980년대 초반부터 친분이 있던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이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는 판공청에 입성한 뒤 전임이자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계인 링지화 세력을 청산하고, 판공청을 시 주석 국정 운영에 효율적인 기구로 변모시켰다. 그는 앞으로 시 주석 ‘1인 체제’ 완성에 진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왕양 부총리

시 주석이 가장 신임하는 ‘경제 책사’


왕양(王洋·62)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가장 신임하는 ‘경제 책사’다. 1기 체제 때 경제 담당 부총리로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 정책 추진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55년 안후이성 쑤저우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20세 때 공산당에 입당했다. 여러 말단 직위를 거친 뒤 44세 때 국가발전계획위원회 부주임으로 중앙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국무원 부비서장, 충칭시 당서기, 광둥성 당서기 등 요직을 거쳤다. 2007년 제17차 공산당대회 후 정치국 위원으로 뽑혀 18차 당대회 때 상무위원 승진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많았지만 파벌 간 힘겨루기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를 눈여겨본 시 주석이 부총리로 발탁해 경제 문제를 일임했는데, 5년간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 주석이 해외 순방과 다자간 외교 무대에 수시로 데려갈 만큼 그에 대한 신뢰가 깊다.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중국 최고의 통치 사상 정립 ‘브레인’


왕후닝(62)은 중국 공산당 최고의 ‘브레인’으로 통한다. 15년간 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으로 재직하며 장쩌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통치 사상을 모두 정립했다.

1955년 산둥성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 정계에서 드문 대학교수 출신이다. 비슷한 연령대 인물들이 20대 초반 하방됐던 것과 달리 상하이 사범대학과 푸단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미국 유학도 다녀왔다.

상하이 명문인 푸단대학 학장으로 재임 중이던 95년 정계로 차출됐다. 그가 발탁된 것은 89년 천안문 사태 때 강제진압을 주창한 장쩌민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정치체제의 개혁이 필요하지만 당 중앙 주도의 개혁을 지지한다.

그는 정치 브레인만이 아니라 장쩌민 때부터 최고지도자의 대외 이미지를 기획하고 선전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당 중앙서기처 서기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자오러지 당 중앙조직부장

반부패 인적청산 작업 공적 인정받아


자오러지(趙樂際·60)는 공산당 중앙조직부장으로 일하면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반부패 인적청산 작업을 뒷받침한 공적을 인정받아 상무위원회에 입성했다.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후임으로 임명된 상태다.

1957년 칭하이성 시닝에서 태어난 그는 문화대혁명 말기 하방을 거쳐 베이징대를 졸업했다. 80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교사, 공직을 거치며 2000년 칭하이성 성장이 됐다. 당시 42세로 최연소 성장이었다. 2003년 칭하이성 서기가 됐으며 2007년 산시성 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칭하이성과 산시성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2012년 제1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발탁됐다.

당의 핵심 요직인 중앙조직부장에 임명된 후 후진타오, 장쩌민 전 국가주석 계파를 밀어낸 후 시 주석의 친위세력을 곳곳에 포진시켰다.

시 주석의 차기 지도부 진용을 설계한 그는 앞으로 반부패 사정을 총지휘할 예정이다.

한정 상하이시 당서기

시 주석 상하이 당서기 때 전력 보좌


한정(韓正·63)은 평생 상하이에서 근무하며 시장과 당서기를 역임한 향관(지방관리) 출신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07년 상하이 당서기로 잠시 재직할 때 상하이 시장으로서 전력 보좌해 신임을 얻었다.

1954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화둥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75년 말단 창고관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성실함과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상하이 서기였던 주룽지 전 총리의 눈에 들어 고속 승진했다. 2003년 최연소 상하이 시장이 됐으며, 2013년 상하이 서기가 됐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대성공은 그의 공적 가운데 하나다.

그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으로 분류되지만, 공산당 입당 후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계인 공산주의청년단에서도 일했다. 시 주석 집권 뒤 상하이방이 대거 숙청됐지만 그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상무 부총리에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