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미셀러니] “정치인, 밥 친구 많아지면 정권 바뀌더라”… 식당서 본 日정치

입력 2017-10-25 05:03 수정 2017-10-25 19:11
일본 중의원 의원회관의 ‘하쓰하나’에서 54년째 일하고 있는 스시 장인 이시하라 요시히로씨. 의원 이름과 스시 기호를 다 외우는 그는 의원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불린다. NHK 캡처

日 국회의사당 식당서 본 정가 이면
스시·규동 등 음식점 성업
오가는 손님 수·표정 보면
권력 이동 느낄 수 있어
NHK, 선거전 풍경 소개


정치가 회의장이나 사무실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음식점에서 오히려 정가의 분위기가 더 잘 감지되기도 한다. 일본 NHK방송은 중의원 선거전이 한창일 때 정치의 이면을 들춰볼 목적으로 국회의사당 내 음식점을 취재했다.

일본 국회의사당 안에는 중·참의원 의원식당과 스시(초밥)집, 규동(소고기덮밥)집, 양식당, 카페 등 15곳이 넘는 음식점이 있다. 이 중 소바(메밀국수)집만 3곳이다. 소바는 빨리 먹을 수 있고 칼로리도 낮아 바쁘고 건강에 신경 쓰는 의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미토안’이란 소바집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점장 마키 다카코(63)씨는 카운터 너머로 정권 교체를 예감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2009년 정권 교체(자민당→민주당)의 주역이던 간 나오토 전 총리는 미토안의 단골손님이었다. 당시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늘 혼자 와서 야채볶음 소바를 먹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기자나 동료 의원들과 함께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횟수가 많아졌다. 방송국에서 간 전 총리의 소바 먹는 모습을 촬영하러 오기도 했다. 마키씨는 이런 변화를 보면서 ‘진짜 정권이 바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고 미토안을 찾아오는 민주당 의원 손님도 늘었다.

의원회관에서 1960년에 개업한 스시집 ‘하쓰하나’는 유명 만화가 히로카네 겐시의 ‘정치 9단’에도 등장한다. 이곳에서 54년째 일하고 있는 스시 장인 이시하라 요시히로(69)씨는 의원들이 ‘대장’이라고 부른다. 의원 수백명의 이름과 얼굴, 각각의 스시 기호까지 외우고 있는 그는 “선거 때마다 새로 외우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2007년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이곳을 찾아왔을 때 이시하라씨는 “선생, 안색이 좋네요. 다음에 총리가 되면 열심히 하세요”라고 말을 걸었다. 웃으면서 그러겠다고 답한 아베 총리는 5년 뒤 재집권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도 이겨 곧 4차 아베 내각을 출범시킨다. 선거가 끝나고 중의원이 새 얼굴로 바뀌게 되자 이시하라씨는 “또 새 얼굴들을 기억해야겠네요”라며 웃었다.

인도 카레 전문점 ‘아카네’의 점원 오구라 아케미(68)씨는 의원들 사이에서 ‘국회의 엄마’로 불린다. 그는 중진 의원에게 “천천히 먹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선생들은 우리 생활에 중요한 것을 결정하니까 몸이 성해야 한다”며 건강 챙기기를 당부한다.

그가 가장 긴장하는 시기는 국회가 해산됐을 때다. 의원직을 갑자기 잃어 낙담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구라씨는 우울한 얼굴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의원들에게 “꼭 다시 오는 거다!”라고 격려한다.

6년 전 개업한 ‘국회중앙식당’은 국회 내에서 가장 최근에 생긴 음식점이다. 노포들 속에서 지명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아 고심하던 식당 책임자 야나기사와 유지(33)씨는 이번 선거를 앞두고 특별메뉴로 ‘이기는 카레’와 ‘이기는 덮밥’을 내놨다. 고기 튀김을 뜻하는 가쓰(カツ·커틀릿의 일본식 표기) 대신 발음이 같은 가쓰(勝つ·이기다)로 이름 붙인 것이다. 이를 내놓자마자 의원 10명 정도가 사먹고 갔다. 야나기사와씨는 이 메뉴를 먹고 당선된 사람이 나오면 의원직 희망자들이 앞다퉈 먹으러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