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경제인사이드] 식품관 “백화점 주인공은 나야, 나”

입력 2017-10-26 05:00
식품이 매출 효자 품목으로 떠오르면서 식품관을 확장한 백화점들이 맛집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마켓과 식음료를 합친 ‘그로서란트’ 콘셉트로 구성한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의 ‘고메이 494’. 갤러리아백화점 제공
축구장 2개 규모에 100여개의 맛집이 들어 와 있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식품관. 현대백화점 제공
‘분당의 부엌’을 콘셉트로 꾸민 뒤 지역의 유명 맛집을 유치한 AK플라자 분당점의 식당가(위에서부터). AK플라자 제공
명품 대신 식품관이 백화점 효자 노릇
현대백화점 식품 매출, 수입명품 제쳐
디저트류 인기 끌자 식품관 리뉴얼 붐
그로서란트 새 단장, 맛집 유치 주력

“백화점의 주인공은 나야 나!”

식품이 백화점 매출을 견인하는 효자 상품으로 등극했다.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셰’가 프랑스 파리에서 문을 연 1852년 이후 백화점의 주인공은 단연 패션이었다. 국내 백화점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패션 중에서도 고가의 유명 수입 브랜드, 즉 ‘수입 명품’이 매출 효자 상품으로 꼽혀 왔다. 식품은 ‘100가지 물건을 파는 상점’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백화점에서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상품군이었다. 식당 역시 쇼핑을 하다 출출해진 소비자들의 허기를 채워주던 공간이었다.

백화점에서 그저 그런 조연이었던 식품이 주연을 꿰찬 것은 2010년대 들어서다. 장기불황과 유통업태의 다양화로 백화점의 독주가 막을 내리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통계청이 내놓은 소매업태별 매출에 따르면 2014년 백화점은 전년 대비 1.61% 감소한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같은 기간 소매업 전체 매출은 1.42% 늘었다. 편의점은 8.66%, TV홈쇼핑 등을 포함한 무점포소매는 7.04%나 신장했다. 면세점을 포함한 대형마트도 3.42% 매출이 늘었다.

롯데백화점 식품부문장 남기대 상무는 25일 “최근 소비자들이 온라인몰, 오픈마켓, 해외직구 등 다양한 쇼핑채널을 이용하면서 패션 상품의 매출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식품관은 매년 매출이 두자릿수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식음료 매출은 전년 대비 2014년 14.4%, 2015년 20.4%, 2016년 11.7%, 2017년 1∼6월 13.8% 신장했다. 이는 2.0%도 채 안 되는 백화점의 전체 매출 신장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매출액도 해외 고가의 명품 매출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2015년 전까지 명품 매출의 80%대에 머물러있던 식품 매출이 지난해 처음으로 90%를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에는 95%까지 올라섰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이미 식품 매출이 수입 명품 매출을 넘어섰다.

백화점에서 식품군이 주연 반열에 올라선 것은 달콤한 디저트류의 공이 절대적이다. 2012년 8월 신세계 강남점에 단독 입점된 ‘슈니발렌’은 백화점 디저트의 전설로 남아 있다. 밀가루 반죽을 둥글게 말아 튀긴 독일 전통과자인 슈니발렌은 특이한 맛은 아니었다. 나무망치로 부숴 먹는 재미가 입소문이 나면서 소비자들은 슈니발렌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한동안 하루 평균 1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 개 3500원이었으므로 하루 3000개 가까이 팔린 셈이다. 슈니발렌 효과에 놀란 백화점들은 앞다퉈 디저트 매장을 열고 달콤한 맛의 한판 대결을 벌였다.

백화점의 디저트 매출은 사회현상의 한 사례로 인용될 만큼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LG경제연구원은 2014년 ‘절제된 소비의 작은 탈출구, 작은 사치가 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서는 “매출 성장세가 둔화되는 백화점과는 대조적으로 백화점 내 고급 디저트 매장의 매출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불황이 길게 이어져 소비 여력 없이 절약하는 생활을 하다가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위안을 얻고자 작은 사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은 사치는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소품에서 최대한의 만족치를 추구하며 합리적인 소비를 즐기는 소비 형태를 가리킨다.

디저트로 재미를 톡톡히 본 백화점들은 식품관 리뉴얼에 앞다퉈 나섰다. 갤러리아백화점은 2012년 10월 압구정점 지하 1층의 기존 식품관을 새단장해 ‘고메이 494’로 이름까지 붙였다. 당시 갤러리아백화점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포맷인 ‘그로서란트’ 콘셉트로 새로운 ‘식(食) 문화’를 제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로서란트는 마켓(Grocery)과 식음시설(Restaurant)을 합친 단어다. 신세계백화점은 2014년부터 대대적인 식품관 리뉴얼을 진행했다. 신세계 본점 식품관은 ‘신세계 푸드마켓’으로 재탄생했다. 롯데백화점은 2014년 10월 서울 잠실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 130년 전통의 이탈리아 식료품 브랜드 ‘펙’을 열었다. 식료품, 와인, 레스토랑까지 이탈리아 현지 매장을 그대로 구현했다.

식품관을 떡 벌어지게 꾸며놓은 백화점들은 새로운 디저트 소개에 이어 다양한 고객층을 아우를 수 있는 맛집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2015년 8월 오픈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축구장(7140㎡) 2개를 합친 크기의 초대형 식품관(1만3860㎡)에 ‘이딸리’ 등 100여개의 다양한 맛집을 들여놨다. 지난 20일 새롭게 단장한 천호점의 식품관에는 미슐랭 빕구르망에 선정된 칼국수 전문점 ‘황생가’, 80년 전통 프랑스 이즈니 버터만을 사용하는 ‘이즈니 생메르’ 등 맛집을 유치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센트럴시티에 1만4800㎡ 규모의 식음 전문관 ‘파미에스테이션’을 열었다. 10개국 30여개 식음 브랜드를 유치해 국내 최고 수준의 맛집 클러스터로 만들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월 잠실점 식품관을 리뉴얼하면서 30년 이상된 노포(오래된 점포)를 유치해 차별화에 나섰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35년째 운영중인 ‘만다복’, 1940년대 일본 카나가와현에서 본점을 오픈한 숙성 돈카츠 전문 브랜드 ‘다이치’ 등을 오픈했다. 지난 4월 ‘분당의 부엌’을 간판으로 내걸고 새단장한 AK플라자 분당점은 지역맛집 유치에 공을 들였다. 연남동에서 쌀국수로 유명한 ‘소이 연남’, 가로수길의 이탈리안 캐주얼 다이닝 ‘솔트’ 등이 들어와 있다.

현대백화점 식품사업부장 홍정란 상무는 “소비자들의 백화점 방문 목적이 의류, 잡화 등의 상품 구매에서 식당가, 푸드&음료 코너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휴식과 여가를 즐기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식품 매장이나 식당을 찾은 고객들은 다른 상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분수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백화점들이 식품관에 정성을 기울이는 이유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이 올해 상반기 품목별 연관구매율을 살펴본 결과 식품(66.5%)이 제일 높았다. 가장 낮은 명품(19.1%)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현대백화점의 연관구매율은 지난해 연간을 기준으로 각 상품군에서 3번 이상 구매한 고객이 해당 상품군을 포함해 일으킨 매출을 백화점 전체 매출로 나눈 비율이다. 신규 고객을 단골고객으로 만드는 데도 식품이 기여하는 바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백화점 카드고객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신규 고객들은 식품관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백화점 식품담당 김선진 상무는 “최근 백화점과 쇼핑몰의 성패는 식품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백화점에서 차지하는 식품 장르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면서 “백화점들은 앞으로도 차별화된 식품관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기 위해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