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윗물 적폐’ 눈감고 아랫물에만 눈 부릅

입력 2017-10-24 18:47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년부터 ‘외부인 출입·접촉 관리방안 및 윤리준칙’을 도입한다고 23일 밝혔다. 이에 따라 공정위 출입이 빈번한 법무법인 변호사나 대기업 임직원, 공정위 퇴직자는 사전에 등록을 해야만 출입할 수 있게 된다. 공정위 직원들은 외부인을 사무실에서 만날 때 상세한 면담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이 사람들을 사무실 밖에서 만난다면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도 상세 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쉽게 말해 공정위 모든 직원이 로비에 휘둘릴 우려가 있다고 보고 근무시간을 포함해 24시간 감시하겠다는 것이다.

실효성을 떠나서 이런 제도가 왜 나왔는지를 생각해보면 방향성이 크게 잘못됐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 공정위의 적폐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사건’에서 공정위 부위원장은 삼성·청와대의 로비를 받아 이를 실행에 옮겼다.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CJ 불공정행위 사건’ 때 공정위 사무처장을 불러 고발대상이 될 수 없는 CJ E&M을 고발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가습기 살균제 표시광고법 위반 사건’에선 ‘윗선의 외압’을 상임위원이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적폐행위를 저지른 이들은 모두 1급 이상 고위직이었다. 반면 실무진은 고위직의 잘못된 행동을 남몰래 기록하고, 기억해 적폐청산에 기여했다.

또한 이번에 마련한 제도에는 청와대 등 권력의 외압을 막을 ‘방파제’가 없다. 신영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앞으로 고민할 부분”이라고 얼버무렸다. 여기에다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정부청사 방호인력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이 제도는 공정위 예규로 시행돼 이조차 불가능하다. 출입 금지된 외부인이 공정위 사무실에 들어오면 그때야 쫓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인권침해 소지와 허점투성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공정위 고위직의 과거 적폐행위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우선이지 않을까.

세종=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