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장 18절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인근에 도착했을 때입니다. 당시 여리고는 이스라엘과 벌일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고조됐을 것입니다.
여리고에 사는 라합의 집에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이 찾아왔습니다. 라합은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신고하는 대신에 그들을 구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배신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라합은 왜 이렇게 위태로운 행동을 했을까요. 라합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을 꺾고 광야를 건너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리라는 믿음을 품었습니다. 라합은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로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저와 가족을 구원하소서.’ 곧 두 정탐꾼이 정확히 라합의 집을 찾아간 것은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었고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본문은 두 정탐꾼이 자신들을 살려준 라합에게 그녀와 가족의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이 약속이 지켜지기 위한 두 가지 조건도 제시합니다. 첫째, 창문에 붉은 줄을 매는 것입니다. 붉은 줄은 출애굽시 문설주에 발랐던 어린양의 피를 연상하게 합니다. 라합은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창문에 있는 붉은 줄의 상태를 확인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창문에 무슨 붉은 줄이냐’며 흉을 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라합은 붉은 줄을 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라합에게 붉은 줄은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장신구로 사용하지만 우리에게는 구원의 길입니다. 성경은 생명책입니다. 라합이 매일 붉은 줄을 점검하듯 성도는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두 번째 사명은 가족을 집에 모으는 일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라합이 가족들을 찾아갔을 때 호의적인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거절당하고 비난받아도 라합은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는 분재가 여러 개 있습니다. 분재는 아름답지만 거의 매일 물을 줘야 합니다. 때로 분주하고 귀찮아서 미루다가도 시들어가는 나무들이 안쓰러워 물을 줍니다. 왜냐하면 물을 주는 일이 나에게는 귀찮은 일 정도이지만, 분재 입장에서는 살고 죽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전도의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전도는 하면 좋은 일 정도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신자 입장에서는 살고 죽는 문제입니다. 라합이 수고와 눈물로 가족을 모았듯이 새신자를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인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이방여인 라합의 믿음은 자신과 가족을 구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를 다윗의 계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되게 합니다. 라합의 두 가지 사명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사명입니다. 믿음으로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이는 곧 성도의 사명이자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이 시대의 라합이 되기를 바랍니다.
황성은 제주한빛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교회의 사명
입력 2017-10-2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