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로 검찰 수사를 받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덕성에 큰 타격을 줬던 일명 ‘논두렁 시계 사건’에 이명박정부 국가정보원이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이 공기업·민간기업을 압박해 정권에 우호적인 보수단체를 지원토록 한 사실도 드러났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는 23일 산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로부터 이 같은 조사결과를 보고받아 검찰 수사의뢰 등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개혁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2009년 4월 21일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측근이던 국정원 간부는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간부는 “(노 전 대통령) 고가시계 수수 건 등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니 언론에 흘려서 적당히 망신주는 선에서 활용하시고,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난 다음날 KBS는 노 전 대통령의 ‘명품시계 수수’와 관련한 보도를 했다. 국정원이 이 전 부장에게 사실상 시계와 관련한 ‘언론플레이’ 지침을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그해 5월 조선일보에 ‘국정원 수사개입 의혹’이 보도되자, 국정원 직원이 KBS 보도국장을 만나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하며 현금 2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개혁위는 국정원의 수사개입이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에 해당하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KBS 전 보도국장 행위는 뇌물죄에 해당될 여지가 있어 검찰에 수사의뢰할 것을 국정원에 권고했다.
국정원은 또 2009년 청와대 요청으로 보수단체 육성방안을 마련해 실행했다. 국정원이 나서 공기업을 보수단체와 연결해 활동자금 지원을 시작했다. 2010년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삼성 현대차 LG SK 한화 롯데 GS 등 대기업까지 후원대상을 확대했다. 2011년에는 보수성향 인터넷 매체가 지원대상에 추가됐다. 국정원은 2012년 중반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활동이 노출되자 해당 사업을 급하게 종료했다. 개혁위는 국정원이 공·사기업을 압박해 특정단체를 지원한 것은 국정원법상 정치관여 금지 의무 등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검찰에 원 전 원장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이외에도 개혁위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정보 유출사건’이 첩보를 수집한 국정원 직원의 단독행위가 아닐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 수사를 의뢰하도록 국정원에 권고했다. 다만 개혁위는 민간인 해킹 사건과 관련해 2015년 유서를 남기고 마티즈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된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의 변사사건은 ‘자살’로 판단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MB국정원 “盧 시계 흘려 망신줘라”
입력 2017-10-23 2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