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심의종료’ 사실상 면죄부… 10년간 121건 재심·재조사 안해

입력 2017-10-23 19:13
지난 10년간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린 121건 중 재심의나 재조사에 들어간 사건은 1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다시 판단하겠다며 제재를 하지 않는 심의절차 종료 결정이 사실상 무혐의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때문에 지난해 8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공정위가 기업에 면죄부를 주면서 여론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공정위는 2008년부터 현재까지 121건의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렸다. 이들 사건 중 대다수는 재심의나 재조사에 착수하지 않으면서 공소시효나 처분시효(5년)가 지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121건 중 공소·처분시효가 지난 사건이 몇 건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심의절차 종료 결정을 내리기만 했지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또 심의절차 종료 결정은 소위원회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전체 121건 중 전원위원회 결정은 12건(9.9%)에 불과했다. 10건 중 9건은 모두 소위원회에서 나왔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소위원회에서 심의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전원위원회는 공정거래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부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4명으로 구성된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주요 사건을 다룬다. 이와 달리 소위원회는 통상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1명으로 구성된다. 심의절차 종료를 기업 ‘면죄부’로 악용하기에는 과반수인 5명 이상을 설득해야 하는 전원위원회보다 소위원회가 용이한 구조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경우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이기 때문에 심의 배당에서 전원위원회로 갈 만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당시 공정위 심판관리관실 담당 과장은 “여름 휴가철로 전원위원회 구성이 어렵다”는 이유로 위원장에게 보고조차 없이 소위원회로 사건을 배당했다. 이후 소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공정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외압이 작용했고, 당초 ‘합의결렬(자동적으로 전원위원회 상정)’ 결정은 심의절차 종료로 바뀌었다.

이 사건 주심인 김성하 상임위원은 외압을 부인하며 합의 과정에서 전원위원회 상정 여부를 공정위원장에게 물어보기 위한 절차를 밟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원위원회 상정 여부는 사건 배당 전에 결정된다. 소위원회에 배당된 이후에 있어서는 안 될 절차다. 실체적으로는 심의절차 종료에 합의했고, 윗선과 절차상 협의만 했다는 김 상임위원의 해명 역시 마찬가지다. 송기호 변호사는 “공정위가 절차와 실체적 합의를 따로 한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