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용서, 기독교가 나서야”

입력 2017-10-24 00:08
홍인식 순천중앙교회 목사가 23일 ‘우리민족 용서와 화해연구소’ 주최로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용서의 목회, 화해의 선교’ 주제 강연에서 화해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는 용서에 ‘예외’가 있습니다. 다 용서해도, 저 사람은 안 돼. 그렇게 켜켜이 쌓여 있는 증오심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런 용서와 화해는 기독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앞으로 민족의 용서와 화해 사역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민족 용서와 화해연구소’는 23일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용서의 목회, 화해의 선교’를 주제로 창립 기념 강연과 워크숍을 열고 이같은 문제의식을 던졌다.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는 10년 넘게 ‘회복적 정의’ 사역을 해온 경험과 실제 사례를 소개하면서 한국 교회의 평화사역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그는 “오랫동안 개신교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의 ‘아니오(No)’를 통한 저항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궁극적인 미션인 ‘예(Yes)’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며 “분열, 갈등, 폭력의 이방 땅에 샬롬의 나라를 실천하는 화해의 실천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예’의 응답”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하나님의 자비가 느껴지지 않는 분열, 손상, 파괴, 증오의 현장이라는 이방 땅에서 화해를 통해 그분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인식 순천중앙교회 목사는 해방신학적으로 화해와 용서에 대해 설명했다.

43년간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활한 홍 목사는 쿠바 생활을 비롯해 느림과 여유를 가진 현지 문화와 해방신학의 희생양 논리를 소개했다. 홍 목사는 “해방신학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이 대속적인 희생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다 죽음으로써 자신의 생애를 드렸다고 생각한다”며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어도 대가와 상관없이 베풀어주는 용서”라고 강조했다. 홍 목사는 귀국 뒤 2년 넘게 전직 목회자와 교인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던 순천중앙교회에서 무조건적인 용서의 신학과 목회 사역을 통해 교회 안에서 용서와 화해가 이뤄진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밖에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과 상처의 문제점을 진단했다. 또 오영희 덕성여대 교수는 개인과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용서와 화해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강의했다.

연구소는 2014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이근복 원장과 손운산 목사, 동두천 나눔의 집의 김현호 신부, 오영희 덕성여대 교수 등이 모여 만든 용서모임에서 출발했다. 매달 용서와 화해 관련 전문가 및 현장 활동가를 초청해 우리 민족과 사회의 용서, 화해, 치유에 대한 대화를 진행했고, 본격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 연구소 창립에 이르게 됐다.

이들은 오는 12월부터 매월 첫 주 월요일 오후 6시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용서와 화해를 위한 기도회를 연다. 기도회를 시작으로 용서와 치유를 위한 학교, 용서와 화해 문화 확산을 위한 예술제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나가기로 했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